채식 5년차가 발견한 새로운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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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기자]
퇴근길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누군가 전화기 너머로 대화를 나눈다.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다 보니 대화 소리를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가 없다. 강제로 누군가의 사생활을 전해 듣게 된다. 덕분에 7월 11일(화)이 초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 순대국 어때? 내일이 초복이니까."
어느덧 말복이다. 삼복더위. 초복, 중복, 말복 쓰리 콤보가 있는 무더운 여름날이 지나왔다. 지금껏 이 절기마다 엄청나게 많은 동물이 도살되었다. 오로지 인간의 보양식을 위해서 말이다.
선조들은 복날이면 개를 먹었다. 오늘날에도 그 끈질긴 역사는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요즘에 개 먹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필자가 올해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개 사체를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근처 전농로터리시장에서도 보신탕 집을 봤다. 여전히 먹는 사람이 있다. 먹는 사람이 있다는 건, 죽는 개가 있고 개를 죽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본 방송에서도 호텔 만찬에 통째로 구운 돼지다리를 칼로 자르는 셰프의 모습이 나왔다. 그게 개였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돼지인 탓에 세상은 조용하다.
개를 먹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개와 사는 사람들이 일단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교감하고 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육식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는 천변의 오리는 신기해하고 귀여워하면서도, 훈제오리와 오리로스를 맛있게 먹는다. 양떼목장에서 건초를 주지만 양꼬치 회식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 먹기 위한 동물과 전시되는 동물, 그리고 함께 사는 동물, 야생동물은 다 별개인 걸까?
아마 이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말꼬리만 잡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끝없는 논쟁에 지친 이들, 혹은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도 보양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채식 5년 차가 발견한 새로운 여름 보양식
이제 어느덧 채식 5년 차다. 나름의 요령도 생겼고, 채식 초반 때보다는 스스로에게도 덜 엄격하면서 오히려 오랫동안 채식 지향 식단을 유지할 방법을 찾았다.
여름 최고의 보양식은 콩국수다. 부동의 1위다. 채식 초기부터 여름마다 '콩국수 유람'을 떠날 정도다. 초반부에는 설탕을 넣어서 먹었다면 올해부터는 설탕 없는 콩국수의 맛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 아내가 만들어준 오이냉국 |
ⓒ 이현우 |
게다가 소화 흡수를 돕기도 하고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곡류, 해조류, 콩류 등과 함께 섭취하면 효능이 상승된다고 하니 곡류, 해조류, 콩류를 자주 챙겨 먹는 채식인들에게 오이냉국처럼 좋은 보양식이 없다.
아내가 요리해 준 오이냉국이 정말 만족스러워서, 나는 회사 점심 도시락으로도 챙겨갔다. 아내가 만들어준 오이냉국이 다 떨어질 때쯤 마트에서 다시 장을 보고 직접 오이냉국을 만들어봤다.
밥 한그릇 뚝딱 '오이냉국 레시피', 비결은 6-4-1-6
오이냉국을 상상해 보자. 새콤한 맛, 약간 달큼한 맛 그리고 짭조름한 맛이 상상될 것이다. 대략 식초, 설탕, 소금이 조미료로 들어갈 거란 예측이 되는데,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해 보면 실제로 그러하다.
오이냉국 레시피를 검색해 보면 '6416'을 기억하라는 여러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6416은 식초, 설탕, 소금의 비율 6:4:1과 물 600ml를 뜻한다. 온라인 많은 게시물은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만든 레시피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백종원이 6416을 언급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백종원 유튜브에는 다른 비율로 적혀 있다.
하지만 6416을 누가 말했건, 여기서 중요한 건 오이냉국이다. 맛있는 오이냉국만 만들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6416을 기본 비율로 해, 새콤함을 가미하고 싶다면 식초를 더 넣고, 달큼함을 가미하고 싶다면 설탕을 더 넣으면 된다.
백종원 유튜브에 공개된 레시피에 보면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그리고 소금이 아니라 국간장과 액젓을 넣어 만든다. 취향에 따라 재료를 넣고 빼고 양을 늘리고 줄일 수 있다.
몇 번의 오이냉국을 직접 만들어본 결과, 식초, 설탕, 간장, 마늘은 꼭 들어가야 한다. 소금보다는 백종원의 레시피처럼 간장을 넣을 것을 추천한다. 비건 지향인 필자는 액젓을 빼고 만들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 나왔다.
2. 간 마늘 20g(1큰술)을 넣고 섞는다.
3. 오이 1개를 먹기 좋도록 채 썬다. (기다란 오이를 사선 방향으로 45도 각도로 썬 다음 채 썬다.)
4. 양파 1개도 오이와 비슷한 두께로 채 썬다.
5. 청양고추 하나를 썰어준다.
6. 채 썬 양파, 오이, 청양고추를 국물에 넣고 저어준다.
▲ 김오이냉국으로 차려진 밥상 |
ⓒ 이현우 |
유튜브 레시피를 참고하긴 했지만, 최대한 간편한 요리를 지향하는 필자는 조리 과정을 최소화했다.
매년 찾아오는 복날마다 새로운 보양식을 발견하는 건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올해는 오이냉국이라는 보양식을 발견했다. 식초와 해조류를 함께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니 김이나 미역을 넣어 먹어도 좋다.
필자도 집에 있는 김을 잘라서 조리해보기도 했다. 양 조절을 실패해서 김이 오이를 압도해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연둣빛 오이가 검은 김에 가려져 김오이냉국이 아니라 검은 냉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음식이 맛있으면 된 거 아니겠는가. 다만 해조류를 넣어 먹는다면 주의할 점이 있다. 반드시 식사 후에 거울을 확인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의도치 않게 '영구 없다'로 웃음을 주는 이가 될지도 모른다.
채식 보양식으로 무더위 대비, '좌냉국 우콩국수'
숨만 쉬어도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 여름이었다. 이제 여름 무더위는 '좌냉국 우콩국수'로 대비해야겠다.
새로운 보양식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이 여름 무더위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내려쬐는 태양볕도 뜨겁게 느껴지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찜질방과 같은 고온다습한 바깥공기가 무시무시하다. 인간만이 이 더위를 느끼진 않을 테다. 숨을 쉬는 생명체라면 더위를 느낄 테다. 오히려 그들에겐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벌써 초복,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이 성큼 다가왔다. 보신탕, 삼계탕, 삼겹살, 한우, 장어, 순댓국. 모두 숨을 쉬는 생명체의 살로 만든 보양식이다. 인간이라는 종만을 위한 보양을 위해 이 뜨거운 날씨에 뜬 장, 닭장, 축사 등에서 비인간동물이 몸을 부대끼며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무더위에 희생되는 비인간동물을 떠올리며 이번 말복엔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에게 무해한 식탁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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