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행복은 보여주는 게 아냐…인생이 쇼가 되면 불행해진다"

서믿음 2023. 8. 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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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 아냐
행복, 낙관적인 유전자 요인 커
그게 꼭 우수한 특성은 아냐

인류 역사상 ‘마음’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시대다. 마음에서 불안과 우울 등 부정 감정을 몰아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명상에 몰두하거나 태도 변화에 힘쓰고 있다. 노력한 만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갖은 노력을 다해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 건강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감이 현실을 더 옥죄기도 한다. 행복은 노력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일까. 오랜 시간 행복에 천착해온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 아니라는 것. 그는 현대인이 행복과 관련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오해에 관해 서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사진=서믿음 기자]

-어떻게 지내는지. 행복 연구는 지속하고 있나.

▲행복에 관해서는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핵심은 행복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자기계발서에 그런 류의 주장이 많은데, 전혀 효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 그림에서 볼 때 아주 미약하다. 너무 더운데 마음 먹는다고 시원해지겠나. 우리 몸이 더위와 추위를 느끼듯, 감정은 외부 상태에 대한 반응이다. 생각 변화가 미치는 영향에 한계가 있다. 그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국가가 풍족한 나라보다 행복도가 높다는 이야기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예전에 영국의 어떤 연구소에서 방글라데시의 행복도가 선진국보다 높다고 발표한 연구 결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해당 연구의 기준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래 과학이란 게 10번 측정하면 한두 번 예외가 나온다. 그런 예외가 뉴스거리가 되기는 좋지만, 과학이라는 건 일관된 결과를 결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추세적으로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생산(GNP) 수준이 행복감과 같이 간다. 돈 자체로 행복하다기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행복에 필요한 사회 제도나 분위기, 문화적 가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유도나 존엄성도 유복한 나라에서 훨씬 체계가 잘 잡혀있다.

-해당 결과를 보고 많은 사람이 ‘비교’가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오류가 있는 생각인가.

▲리처드 이스털린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인데, 사실 비교만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내가 세 끼를 못 먹었는데 내 친구는 한 끼만 먹었다고 해서 내가 행복감을 느끼진 않는다. 행복에서 절대 고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단지 상대적 우위나 열세에 의한 건 너무 단순한 해석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경쟁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자신의 위치 파악이다. 내가 어느 선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과도한 자유’가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다.

▲1970~1980년도에 나온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같은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핵심은 사람은 구속되면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만, 막상 과도한 자유감을 갖게되면 선택 책임에 기인한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독일 사람들에게 히틀러의 파쇼가 먹힌 이유가 과도한 자유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을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자유도 상승에 따라 과거보다 불행감이 높아졌다는 해석은 정확한 측정치가 없기에 논리가 탄탄하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행복은 마음을 달리 먹거나 생각을 바꿔서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인가.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39도인데 ‘시원해~시원해’라고 생각해서 물도 안 마신다면 죽고 만다. 인간이 사자와 마주했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도망가니까.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됐기 때문에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껏 살아남았다. 감정이 이성에 쉽게 조절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이는 마음 소프트웨어가 고장난 것과 같다.

-하지만 ‘감사일기’ 등으로 행복해졌다는 사람이 많고, ‘할 수 있다’는 이미지트레이닝으로 효과를 봤다는 운동선수가 적지 않다.

▲보편적인 그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로 우승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게 해서 탈락한 수많은 선수가 존재한다. 극도로 긴장하면 실력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겁에 질려 금메달을 따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걸 들으려고 한다. 자기계발서의 오류가 여기서 나온다. 과학은 확률적으로 월등하게 많은 것을 측정한다. 일부 예외를 과장하면 안 된다. ‘감사일기’도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이지 못하다는 논문들이 최근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부가 효과를 봤으니 당신도 매일 쓰라는 건 고문일 수 있다. 오히려 더 불행해지기 쉽다. 해봤는데 왜 난 안 될까 하면서 자괴감을 가질 수 있다. 사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유전이다.

-행복한 삶이 유전된다는 것인가.

▲비타민 많이 먹고, 우유 많이 마시면 키 큰다고 하지만 안 클 사람은 안 큰다. 유전이 절대적이다. 쌍둥이가 다른 성장 환경에 놓인다고 해도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는 비슷하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항상 약간 행복한 상태다. 지속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이른바 행복마케팅에 따른 스트레스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그냥 세상 모든 게 좋아 보인다. 책 읽고 공부해서 그런 게 아니다. 여기서 주의할 건 행복이 꼭 우수한 특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장일단이 있다. 전갈이 널려있고, 외적 침입의 위험 상황에서는 예민하고 불안감 높은 사람이 생존에 유리하다. 코로나19 상황이 수백 년간 지속한다고 하면 낙관적인 사람은 다 죽고 없을 수 있다. 성격 특성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밥 먹는 것’을 예로 꼽았다.

▲행복은 경쟁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있다. 강남의 아파트, 그럴 듯한 명함에서 얻는 우월감을 행복으로 포장하지만 행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호모사피엔스에게 즐거움을 주는 큰 자극원은 사람이다. 타인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은 혼자 얻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독불장군처럼 살아 오래 생존한 인간은 없다. 사랑이라는 자원을 만나 타인과 두터운 관계를 형성할 때 생존확률이 높아졌기에, 인간의 뇌는 양질의 사회적 경험을 할 때 ‘좋다’라는 느낌을 강화한다. 일상 장면 중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뇌의 행복 전구를 켤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포인트다. 단 내사람만 포용하고 외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피해야 한다. 윤택한 사회적 관계란 친구와 치맥을 즐기는 게 아니라 얼마나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배려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현 시대의 행복을 어떻게 평가하나. 행복도는 점점 더 낮아질까.

▲성공을 추구하지만 역설적으로 소득이 올라갈수록 사람의 중요성은 내려간다. 돈이 남아도 주변에 사람이 없다. 부자가 되면 행복해진다는 건 모순이다. 처음에는 손에 손잡고 올라가도, 어느 선을 넘으면 올라갈수록 한쪽이 빈곤해진다. 부자가 될수록 일상에서 사람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은 줄어든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물질주의적인 사회다. 경제 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도가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예외다. 잘 살지만 행복도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잘 사는 지옥이다. 특히 상호 불신도가 너무 높다. 내편 네편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사회는 행복하기 어렵다. 이런 추세가 증폭한다면 행복도는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인·사회적으로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행복은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인생이 쇼가 되면 승산이 없다. 국가도 개인의 행복도를 직접적으로 높여줄 수 없다. 다만 뚜렷한 불행한 상황을 줄여줄 수는 있다. 행복도 불행도 결국 사람을 통하기에, 불쾌의 씨앗이 될 상황을 없애는 데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를 안 지키는 사람을 신고하면 포상금 줬던 것, 이런 건 소탐대실이다. 필요하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 사회적 영역에 까칠까칠한 가시가 많고, 일상에서 그걸 자꾸 대해야 하는 상황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에 비해 행복도를 낮추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먼 곳에서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다. 뒷사람 들어올 때 웃으며 문을 잡아주는 작은 경험만 쌓아도 서로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다.

서은국 교수는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의 선구적인 행복 연구가로 평가받는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써낸 논문들은 미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의 논문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행복 측정 보고서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좋아하는 평양냉면과 친구들을 잊지 못해 2003년 귀국한 뒤에는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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