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대선후보 향해 총 50발 난사…머리 3발 맞아 숨졌다
마약 카르텔이 득세하고 있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대선 후보가 9일(현지시간) 선거 유세장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일주일 전 마약밀매 조직으로부터 위협 받은 사실을 공개했었다.
머리에 총알 3발 맞아 사망
엘 디아리오 엑스프레소, 엘헤랄도 데 멕시코 등 남미 매체에 따르면 야당인 건설운동 소속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60)가 이날 오후 6시 20분께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선거 유세를 마친 뒤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다.
비야비센시오가 흰색 밴을 타고 이동하려던 중 오토바이를 탄 괴한 세 명이 길을 막았다. 이어 괴한들은 비야비센시오와 일행에게 40~50발의 총격을 가했다.
그중 약 3발이 비야비센시오의 머리에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격 직후 그는 100m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비야비센시오의 삼촌 갈로 발렌시아는 현지 매체에 "의료진이 내 조카가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고 확인해줬다"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관련 영상에는 총성이 울리자 수많은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숙이고, 비야비센시오 일행이 벽 뒤로 몸을 숨기려는 모습이 담겼다.
이날 총격으로 비야비센시오 외에 경찰관을 포함한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현장에선 폭발물도 발견됐으나 폭발물 처리반이 안전하게 제거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콰도르 검찰은 SNS에 "보안요원과의 총격전에서 부상한 용의자를 체포했으나 병원으로 후송하던 중 구급차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사망한 용의자 주변 인물에 대한 탐문 수사 등을 통해 범행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살해 전 마약 조직 위협 받아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에콰도르에는 마약 카르텔이 득세하면서 살인 등 강력 범죄율이 치솟고 있다. 단속 경찰을 겨냥한 테러도 다수 일어나고 있어, 일부 지역에선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 병력도 투입됐다. 이에 따라 마약과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 오는 20일 열리는 조기 대선 선거운동의 핵심 쟁점이 됐다.
정치인들도 마약 밀매 조직의 표적이 됐다. 비야비센시오도 약 일주일 전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로부터 위협을 받았고,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앞서 지난 7월 23일에는 아구스틴 인트리아고(38) 만타 시장이, 지난 2월 4일에는 오마르 메넨데스(42) 푸에르토 로페스 시장 당선자가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기예르모 라소(68) 에콰도르 대통령은 SNS에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다"며 "조직 범죄가 크게 발전했는데, 법의 심판이 그들에게 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콰도르는 중남미에서 치안이 가장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국가다. 올해 상반기에만 에콰도르 주민 3513명이 피살됐다. 전년 동기 대비 58% 급증한 수치다.
반부패에 앞장선 정치인
앞서 지난 5월 17일 비리 혐의로 탄핵 위기에 몰린 라소 대통령은 임기 2년 정도를 남기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서 역대 처음으로 국회 해산권도 행사했다. 에콰도르는 갑자기 조기 대선과 총선을 치르게 되면서 혼란에 빠졌다.
약 3개월 만에 급하게 열리는 대선에는 8명의 후보가 나왔다. 그중 한 명인 비야비센시오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지난 6월부터 이달 5일까지 공표된 20여 차례의 현지 여론조사에서 중위권의 지지율을 얻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결과에서는 깜짝 2위를 차지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비야비센시오의 지지율이 점점 올라가면서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비야비센시오는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2007∼2017년 재임)의 부패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해 명성을 얻었다. 지난 2021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중국 업체에서 건설한 에콰도르 최대 수력발전소인 코카코도 싱클레어의 구조적 결함(균열)을 추적한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등 반(反)부패에 앞장섰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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