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도 편 가르는 대통령, <조선> 보도를 읽어보라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8. 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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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군사정권도 인정한 '좌파 독립운동가', 윤 대통령은 배제하려 하나

[김종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 김영관 애국지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78주년 광복절을 앞둔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8명을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국가를 위한 희생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대통령의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이날의 오찬 행사를 평가했다.

오찬장에서 윤 대통령이 특히 강조한 것이 있다. 일반적 의미의 독립운동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독립운동이었다.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오찬 환영사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라며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민주주의 독립운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진영의 독립운동을 포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다며 "빼앗긴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도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경제발전과 산업화, 민주화로 계속 이어졌다"라고 발언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해방 뒤에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반공운동으로 이어졌다는 발언은 그가 말하는 독립운동이 전체 독립운동보다는 우파 진영의 독립운동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지난 7월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진짜 유공자, 가짜 유공자를 가려내는 것은 국가보훈부의 존재 이유입니다. 상시적인 책무입니다"라며 독립유공자 1만 7748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수 조사를 벌이는 이유와 관련해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목적이 있는 겁니다"라고 한 뒤 "우리 국민한테 자유를 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며 "자유도 없는 전체주의 국가를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경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을 던졌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의 독립운동은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독립운동'이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좌파의 독립운동을 부인하려는 생각, 그것은 '우리의 독립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묻어난다.

좌파 독립운동 인정한 군사정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함께 찍은 사진. 노태우 정부는 박열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위키미디어 공용
 
한국 독립운동은 좌우 분업으로 이뤄졌다. 좌파는 항일 전투나 의열투쟁에서 두각을 보였고, 우파는 시민운동 방식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1931년에 이봉창·윤봉길을 내세워 침체된 독립운동을 일신한 백범 김구 같은 우파도 의열투쟁에 참여했지만, 군대나 무기를 활용하는 독립운동은 제국주의를 거부하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주로 수행됐다.

양쪽 다 815 해방에 기여했지만, 일본제국주의에 더 많은 타격을 준 것은 좌파 독립운동이었다. 1943년 11월 17일에 미국·영국·중국이 카이로 선언을 통해 한국 독립을 지지한 것은 목숨 걸고 무장투쟁을 벌이는 한국 독립투사들이 세계적인 지지 여론을 형성해 낸 결과였다. 이렇듯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좌파의 항일투쟁을 '우리의 독립운동'에서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윤 대통령의 오찬 환영사였다.

윤 대통령이 보여준 그런 태도는 독립운동가 서훈을 작동시켜온 메커니즘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해 있다. 독립유공자 서훈이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본격화되고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질적 변모를 겪은 배경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결과다.

1961년에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이 무시해 온 독립유공자 서훈을 1962년부터 본격 추진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포함된 박정희가 이 일에 나선 것은, 4·19 때 폭발한 민심을 달래 정권을 유지하려면 그것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해 2월 5일 자 <동아일보> 톱기사는 "4일 상오 내각사무처가 발표한 62년도 상훈 계획의 목적은 국가유공자를 널리 포상함으로써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국민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있으며"라고 보도했다.

당시의 민심은 침체된 상태가 아니라 들끓는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사기 진작'이라는 표현은 그런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민심 수습'의 의중을 감추고자 '국민 사기 진작'을 사용했을 뿐이다. 독립운동가 서훈 계획을 발표한 것이 폭발한 민심을 달래고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공식 발표였다.

박정희 정권 때 본격화된 독립운동가 서훈은 6월항쟁 직후에 제한적으로나마 질적 변화를 겪었다. 종전에 터부시됐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 대한 서훈의 문이 1988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2월 10일 발행된 <조선일보> 14면 좌단 기사는 노태우 정부가 아나키스트 박열을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가들을 서훈하기로 한 일과 관련해 "정부가 6·25 때 납북된 독립유공자 22명을 3·1절을 기해 포상키로 한 것은 그동안 우리 독립운동사가 한쪽에 치우친 점이 없지 않았다는 현실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독립운동사는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이념적 장벽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史實) 평가나 항일 독립투사의 활동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라고 한 뒤 "이번 포상 대상자에는 북한의 소위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조소앙·김규식·유동설·오화영·조완구·윤기섭 등 중도좌파 인사 6명까지 포함돼 있어 이번 조치의 전향성을 엿볼 수 있다"라고 평했다.

위 기사에 언급된 "6·25 때 납북된 독립유공자"란 표현과 "애국열사릉에 안장된"이란 표현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납북된 사람도 애국열사릉에 안장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월북한 사람이 그렇게 되기 쉽다.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인물이 월북자가 아닌 납북자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의 남한 유족이나 친인척을 배려하는 측면도 있고, 월북자를 서훈하는 것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을 의식한 측면도 없지 않다.

6월항쟁을 이끈 재야 활동가나 학생운동가들은 북한을 통일의 파트너로 인식했다. 이들 상당수는 마르크스주의 이념과도 친숙했다. 이런 세력이 중산층의 지지를 받아 직선제 개헌 투쟁을 성사시킨 사실은 노태우 정권이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독립운동가까지 서훈하겠다고 나선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6월항쟁 주체세력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볼 수는 없지만 그런 이념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세력을 체제 내로 끌어들이거나 이들과의 마찰을 줄이려면 독립유공자 서훈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노태우 정권의 판단이었다.

1988년 12월 13일자 <조선일보> 9면 우단은 노 정권이 '납북' 독립투사들을 서훈하기로 결정한 위 사안을 보도하면서 "해방 이후 40여 년 동안 이념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불구를 면치 못해온 우리의 독립운동사, 현대사 연구는 이로써 복원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로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런 뒤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의 납북 독립유공자 포상은 최근 민주화 과정 속에서 일고 있는 이념적 개방 무드, 독립운동사를 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 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의 시각은 최근 '일제하 민족운동의 정통은 소수의 명망가 집단이 아니라 광범한 민중의 호응을 얻은 이름 없는 좌익 운동가들에게 두어져야 한다'는 데까지 나가고 있다."

'이승만 띄우기' 나선 윤석열 정부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지난달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렸다.
ⓒ 조정훈
노태우 정권이 '불구의 독립운동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좌파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 국민을 통합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좌파 독립투사들을 존경하는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4·19 직후와 6월항쟁 직후의 두 사례는 보수 정권의 독립운동가 서훈이 민심 수습을 위한 포용력 과시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6월항쟁 직후 사례는 노태우 정권이 항쟁 주체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좌파 독립운동가들을 포상하는 접근법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좌파가 밉다고 좌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윤 정권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위의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9일 오찬 메뉴 중 하나는 모둠전이었다. 오찬 때 윤 대통령은 김구와 이승만을 언급하면서 "두 분이 같은 편인데 왜 후세 사람들이 나누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또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협조해 달라는 당부의 말도 건넸다. 모둠전을 준비한 배경을 짐작게 하는 장면이다.

독립운동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1925년에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이승만을 위해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모독하는 일이다. 모둠전까지 내놓으면서 하고자 했던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이승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달라'가 아니라 '사회주의·공산주의 독립운동을 올바로 평가하자'는 말이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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