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최동원, 선동열… 전설의 업적 도전하는 벨로시랩터 페디
박철순, 최동원, 선동열. 한국 프로야구 전설들이 밟은 영광에 다가간다. NC 다이노스 에릭 페디(30·미국)가 20승과 1점대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페디는 8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NC가 2-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페디는 올 시즌 15승(3패)을 기록했다. 19경기 만에 15승 고지를 밟은 페디는 프로야구 역대 최소 경기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종전에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 김일융이 19경기 만에 15승을 거뒀다. 페디는 경기 뒤 "개인적으로 승리를 땄지만, 팀이 같이 할 수 있어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페디는 시즌 내내 1점대 후반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 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4이닝 5실점하는 바람에 2.1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SSG전 호투로 다시 1.97까지 낮췄다. 페디는 "야구란 게 야속하기도 하다. 7이닝 무실점을 했는데도 조금 밖에 안 내려갔다"고 웃으면서도 "1점대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KBO리그에서 20승과 1점대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이룬 선수는 4명이다. 1982년 OB 베어스 박철순(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이 최초였다. 1985년엔 롯데 최동원(20승 9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1.92)이 달성했다. '국보'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은 무려 세 번(1986년, 1989년, 1990년)이나 해냈다. 마지막은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 김현욱(20승 2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1.88)이다. 모두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전설이다.
만약 페디가 기록을 달성한다면 21세기 들어 처음이다. 새로운 기록도 탄생한다. 앞선 네 명의 투수는 구원승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페디는 지금까지 선발로만 나섰다. 20선발승-1점대 평균자책점은 최초다. 페디는 "투수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20승보다는 일단 16승을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2014년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가 1라운드에 지명한 유망주였다. 지난해까지 통산 101경기에서 21승(33패, 평균자책점 5.41)을 따냈다. 주로 5선발 역할을 맡았고, 2019년엔 월드시리즈 우승도 경험했으나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FA(프리에이전트)가 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페디와 NC의 만남은 서로에게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
페디의 강점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는 거다. 평균 시속 150㎞에 육박하는 투심 패스트볼이 주무기지만,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을 자유자재로 쓴다. 공 끝의 무브번트가 좋아 배트 중심에 맞추기 어렵다.
특히 한국에 오면서 스위퍼(sweeper)를 추가했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써 유명해진 구종이다. 종적인 변화보다 횡적인 변화가 큰 슬라이더 계열의 공이다. 홈플레이트를 쓸고 지나가 타자가 대처하기 어렵다.
페디는 단순히 좋은 공을 던지기만 하는 선수가 아니다. 팀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주변의 조언도 받아들인다. 롯데전 이후 페디는 체인지업 그립(공을 쥐는 모양)을 바꿨고, 효과를 봤다. 페디는 "물집이 생겨서 체인지업을 던질 때 가운데 손가락이 불편했다. 공을 잡는 위치가 변해 있었는데, 시즌 초처럼 돌아갔더니 효과가 생겼다"고 했다. 이어 "다만 체인지업으로 최정을 맞혔다. 미안하다"고 했다.
팬 서비스도 일품이다. 지난 5월 NC 유튜브엔 페디가 경상도 사투리로 우천취소를 알리는 영상이 올라왔다. 페디가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쓴 문장을 연습한 뒤 "마! 저 봐라. 영 파이다. 오늘 갱기 기 모한다. 내일 온나(저기 하늘 봐라. 날씨가 매우 안 좋다. 오늘 경기 못하니 내일 와라)"라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9개 구단 팬들은 페디에게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NC 팬들은 "여권 태워서 한국에 남게 하라"고 한다. 올스타전에서는 페디가 보는 앞에서 포수 박세혁이 페디의 여권을 불태우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페디는 "다행스럽게도 나는 한 팀(NC) 팬만 신경쓰면 된다"고 웃었다.
NC의 상징은 공룡이다. 페디에게 좋아하는 공룡을 묻자 그는 "벨로시랩터다. 빠르고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힘있고, 변화무쌍한 공을 던지는 투수다운 대답이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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