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中 첨단산업 투자' 자금줄 죄는 미국
中 군사부문 연결 우려…"국가안보 차원"
中 "국가안보 남용" 거센 반발
韓 등 동맹국 동참 압박할듯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인공지능(AI)·반도체·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 개발에 있어 미국 자본의 유입을 막아섰다.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디스리킹(derisking, 탈위험)’ 차원의 조치라는 입장이나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에도 규제 동참 요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오는 18일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주변국에서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백악관, 美 자본 中 기술개발 유입 막아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사모펀드와 벤처 캐피탈 등 미국의 자본이 중국의 첨단 기술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규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을 비롯한 홍콩,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이른바 ‘우려 국가(country of concern)’로 규정하고 AI,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팅 등 3개 분야의 매출이나 순이익, 투자, 영업비용 등이 전체 사업에서 50% 이상인 중국기업에 대한직접 투자를 금지,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행정부는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뒤 세부 시행 규칙을 별도 고지할 방침이다.
이번 조치에 따라 중국에 투자하려는 미국 자본은 투자 계획을 사전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미 재무부 장관(재닛 옐런)은 이들의 신고를 바탕으로 투자 금지 등을 결정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군사·정보 관련 핵심 기술에 있어 국가 위기 상황임을 선언한다"며 "일부 미국 자본의 투자가 이 같은 위험을 한층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대중 수출통제에 이어 첨단기술 자본투자 제한에 나선 것은 중국이 앞세우는 기술굴기의 ‘싹’을 자르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중국의 군사 기술에 활용될 수 있는 각종 첨단기술 개발에 있어 미국 기업과 미국인이 ‘돈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규제 대상인 3가치 첨단기술 분야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 핵심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에 따르면 미 투자자들이 2015~2021년 중국 AI 회사에 공동 또는 단독으로 투자한 건수는 401건, 투자액은 74억5000만달러(9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투자 제한은 중국의 군사·내부 감시 능력의 현대화와 관련한 소수의 핵심 기술을 겨냥한 것"이라며 "중국은 군사 현대화 등을 위해 핵심 민감 기술을 획득하고자 해왔다"고 설명했다.
美, 동맹국 동참 압박할 듯
이번 조치는 대중국 투자 규제에 초점을 맞춘 만큼 당장 한국 등 주변국에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도 적용 범위가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한정되는 만큼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봤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분석 내용에 따라 필요할 경우 정부나 업계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 행보에 있어 동맹국의 참여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우방에 어떠한 형태로든 동참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대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유사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이 국가안보 측면과 연계된 민감기술 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다만 각국의 대응은 온도차가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자국민과 기업의 대중 투자와 관련한 법 개정에 나설 뜻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우 실망" 中, 보복 나서나…업계는 예의주시
중국은 이번 규제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류펑위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매우 실망했다"며 "중국은 미국이 무역과 과학, 기술을 정치·무기화하고 정상적인 경제 교류를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남용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가 아닌 국가 안보 차원의 규제임을 강조했지만, 고위급 회동을 재개한 양국 관계의 냉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중국의 추가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맞춤형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중국은 이를 자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정책 일환으로 볼 것"이라며 "이미 수출 통제는 중국의 보복을 촉발했다"고 전했다. 앞서 마이크론, 갈륨·게르마늄 등에 대한 수출규제처럼 조만간 중국의 추가 보복이 이어질 것이란 예고다.
업계는 양국간 갈등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미벤처캐피탈연합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성명을 통해 "반도체 업계는 국가안보 보장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최종안은 미국 반도체 기업이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경쟁하고 중국을 포함한 주요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규제 대상이 미국 반도체 기업이 아닌 미국 자본이라는 점에서 일단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대중 반도체 추가 수출규제 자제를 권고한 지난 성명과는 달라진 톤이다.
한편 미국이 당초 예상보다 규제 대상의 범위를 좁힌 것을 두고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나온다. 당초 생명공학, 에너지 분야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다. 오리엔트 캐피털 리서치의 앤드루 콜리어 전무는 "서방의 투자업계는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투자 기회를 상실한 것에 실망할 수 있다"면서도 "이를 쫓는 서방의 자금이 너무 많아서 중국은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2022년 중국의 인바운드 직접투자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인 마이클 맥콜 하원의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라면서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희생시키며 산업을 달래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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