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내놓은 정책 뒤집은 교육부... 타당한 근거를 대라
[김형배 기자]
▲ 2019년 11월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은혜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 권우성 |
2019년 11월 교육부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는 고등학교 입시 경쟁의 주요한 원인인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괄 일반고 전환하는 것과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필두로 밀어 붙인 고교다양화 정책은 각 고등학교의 대입 결과와 함께 전국적 차원의 고교서열화를 조장하였으며 일반고의 교육력을 저하시켰다. 이후 전교조를 중심으로 교육·시민단체들은 자립형사립고와 같은 특권학교 폐지를 요구해왔으며 그것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실현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초에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근거를 삭제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여 공포하였으며 25년 해당 학교의 일반고 일괄 전환을 예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 다양화'를 강조하며, 자사고·외국어·국제고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올해 6월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하며 이를 공식화했다.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 이유로 "모든 학생 한 명 한 명이 소질과 적성에 따라 다양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나, 고교유형 단순화는 공교육의 다양성과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제한하며, 소모적 서열화 논쟁으로 고교교육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근거를 들었다. 3년만에 정반대로 돌아서버린 교육부가 과거 자신들의 주장을 어떤 근거로 부정할 수 있는 걸까.
문재인 교육부의 주장
2019년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자사고·외고·국제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이 과열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학부모 부담금이 일반고의 3배에 달해 경제력에 따른 기회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국·영·수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한 외고·국제고의 졸업생들의 관련 계열 진학률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서열화된 고교체제 하에서 특정학교로의 우수 학생 쏠림현상이 과열되어 일반고의 교육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학 진학 결과를 통해 고교서열이 확인되고 있으며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각종 데이터를 제시하며 그 이유들을 뒷받침했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언급하며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하는 이주호 지난 6월 21일 오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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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존치하는 이유에 대해서 일반고 일괄 전환이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며 소모적 논쟁으로 고교교육의 혁신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
21년 4월 기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전체 학생 수는 129만9956명이고 그 중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에 재학중인 학생수는 5만3285명(자사고 3만3444명, 외고·국제고 1만9841명)이다. 23학년도 32개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1.40(주요 10개 자사고 1.82:1 / 22개 지역단위 자사고 1.21:1)이며 27개 외고의 평균 경쟁률은 1.13:1이다.
두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 계산했을 경우 자사고에 지원한 학생은 4만6821명, 외고·국제고에 지원한 학생은(국제고에도 외고 경쟁률 적용시) 2만2420명으로 산출된다. 합쳐서 6만9241명이며 이는 전체 고등학생의 5.3%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학생·학부모의 선택권이라고 했을 경우 5% 내외의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선택권인 것이다. 나머지 94%의 학생·학부모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또한 학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학교 간 교육과정이 다양한 상황에서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사고와 일반고의 교육과정상 뚜렷한 차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서 국·영·수 비율이 높은 것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역으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여지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반고 역시 2015교육과정과 2022교육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실제로 많은 일반고등학교에서 이를 구현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5%에 해당하는 학생·학부모의 선택권이란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소질과 적성에 따른' 교육기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가정에서 대입에 유리한 학군, 학교를 선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윤석열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 이유에 대해 소모적 논쟁이 고교교육 혁신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교육의 주요 정책인 만큼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모적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미 2019년에 정리된 문제에 대해서 교육부가 다시 이를 전면 번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논쟁이 고교교육 혁신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현실에서는 검증할 수 없는 교육부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현장의 교사들은 정치적 논쟁과 상관없이 교육정책과 교육과정대로 성실히 근무하기 때문이다. 굳이 혁신이 안 되는 원인을 찾는다면 교육기관의 정책과 교육과정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정책이, 그것도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국가 대업인 교육정책이 3년 만에 완전 뒤바뀌었다. 학생·학부모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 약속을 저버린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특권학교 존치에 대해 국가교육위원회가 어떠한 의견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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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교조의 기관지인 교육희망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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