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완전히 달랐던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네 시간을 넘게 달렸습니다. 오후가 되어 도착한 곳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입니다.
▲ 에든버러 로얄 마일 |
ⓒ Widerstand |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경우 그 궤적이 달랐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오랜 기간 전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 왕국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독립된 왕국이었죠. 17세기 초엽까지 그랬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과정도 예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1603년 영국의 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 것이 계기였죠. 당시 엘리자베스 1세의 가장 가까운 친족은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였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왕가 사이의 통혼이 자주 이루어졌으니까요.
덕분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같은 왕을 모시는, 동군연합이 된 것입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연합은 그렇게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웨일스는 16세기에 이미 잉글랜드 왕국에 완전히 병합된 상태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이 아일랜드 왕을 겸하는 형태를 갖추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잉글랜드의 식민 지배였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죠.
▲ 에든버러 시내와 에든버러 성의 모습 |
ⓒ Widerstand |
1638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에는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 사이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 혁명이 벌어졌고, 스코틀랜드도 정치적 혼란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1707년, 연합법이 통과되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완전히 통합된 하나의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레이트 브리튼 연합 왕국'이었습니다.
▲ 에든버러 시내 |
ⓒ Widerstand |
1707년 연합법과 함께 스코틀랜드 의회는 사라졌습니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다시 만들어진 것은 300여 년이 지난 1999년의 일이었죠. 1997년 스코틀랜드 의회의 건설에 대한 주민투표가 진행되었고, 스코틀랜드 주민 74%의 동의를 받아 의회가 재건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회에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죠.
▲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
ⓒ Widerstand |
의사당 내부는 의회라기보다는 지역의 커뮤니티 시설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작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방문객을 위한 작은 전시실도 있었습니다. 회의실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회의가 진행될 때에도, 휴대폰 사용을 통제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제재 없이 모두들 자유롭게 회의를 방청할 수 있는 듯 보였습니다.
▲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본회의장 |
ⓒ Widerstand |
벌써 9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든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의 의사당 안에서, 저는 왠지 그 9년 전의 투표를 떠올렸습니다.
▲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내부 |
ⓒ Widerstand |
그러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라는 두 국가의 연합은, 어쩌면 그저 브리튼 섬이라는 영토를 매개로 만들어진 이질적인 조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합 왕국은 수백 년을 존속해 왔고,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의 시민들은 연합 왕국을 이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 에든버러의 언덕길 |
ⓒ Widerstand |
게다가 연합 왕국의 중앙정부는 당당하게 투표로 독립의 가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투표를 통과한 연합 왕국은, 더 떳떳한 정당성을 가지고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이 연합 왕국이 존속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치의 힘과 중앙정부의 정통성. 연합 왕국은 이 두 날개를 가지고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날개가 꺾이지 않는 한, 연합 왕국의 미래도 그리 손쉽게 분열을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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