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동안 이런 재판 처음"…이재명 불리할 때 나타난 변호사들

허정원, 최모란 2023. 8. 10.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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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먼저 기소된 옛 측근들에게 웃지못할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이익이나 의사와 맞서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감시용 변호사’ 논란이 일고 있다. 옛 측근들의 진술이 이 대표 혐의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국면에서 이 대표 또는 민주당과 정치적 인연으로 엮인 변호사들이 변호인단에 참여해 벌어진 일들이다.


의뢰인 “못 읽어봤다”는 의견서 제출한 변호사


2018년 7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집무실에서 이화영 전 당시 평화부지사에게 임용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8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 전 부지사의 대북송금 관련 42차 공판에선 이같은 현상이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이날은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방북비용 300만 달러를 쌍방울 측이 제공하기로 했다고 구두로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이 담긴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데 동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렇게 된다면 이 돈을 이 지사를 위해 제공한 ‘뇌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매듭이 갖춰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그동안 이 전 부지사를 주도적으로 변론해 온 서민석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가 아니라 ‘참관인’ 수준의 역할만 해 온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홀로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다. 김 변호사는 2020년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 변호사로 이름을 올리는 이 대표와의 깊은 유대를 보여온 인물이다.

피고인과 의사를 조율하겠다며 휴정을 요청했던 김 변호사는 돌아와서는 ‘검찰의 회유와 압박에 의한 이 전 부지사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 등을 제출하곤 법정을 나가버렸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피고인(이 전 부지사)에 대한 재판을 변호인 없이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재판은 “증거 부동의”로 끝날 뻔 했다. 김 변호사가 떠난 후 재판장이 김 변호사의 의견서 등을 읽어봤는지 묻자 이 전 부지사가 “못 읽어봤다”고 진술하면서 “내가 유령이냐”, “40년 동안 이런 재판은 처음 봤다”는 둥 소리 지르며 벌인 김 변호사의 좌충우돌은 무의미한 소동으로 끝났다. 재판이 또 22일로 미뤄진 게 유일한 결론이었다.

이날 해프닝은 이 전 부지사의 아내 백모씨가 이 전 부지사를 향해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서민석 변호사에 대한 해임신고서를 제출했다가 이 전 부지사가 “내 의견이 아니다. 해광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번복하며 공전됐던 이전 재판(지난달 25일 41차 공판)의 연장선 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은 현근택 변호사가 지난 2월 15일 오전 수원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 변호사는 수사ㆍ재판자료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아직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단을 맡고 있다. 손성배 기자

피고인 보다는 이 대표와 가까운 변호인들의 무리수는 이전에도 있었다. 민주당 부대변인 출신으로 다음 총선에서 경기도 모 지역 출마를 노리는 현근택 변호사는 뒤늦게 변호인단에 합류했다가 수사·재판 내용을 불법적으로 빼돌려 민주당에 보고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섰다. 지난 3월19일 이 대표가 전 쌍방울그룹 비서실장의 증인신문조서 일부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유출 경로가 현 변호사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검찰독재탄압대책위원회 역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기록인 쌍방울 계열사(SBW생명과학)의 투자유치보고서를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현 변호사는 현재 수원지검 형사1부(부장 손진욱)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 분이 보내서 왔다”→자백 기폭제 되기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지난 3월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 수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의 진술이 바뀌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면서 '감시용 변호사'에 대해 언급했다. 연합뉴스.

피고인이 아닌 이 대표를 챙기려는 변호사의 시도가 부작용을 낸 일도 있었다. 대장동 사건 키맨으로 불리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대표적이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해 9~10월 검찰에 낸 자술서를 통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이재명 대선자금 10억원을 요구받고, 남욱 변호사로부터 자금을 받아 7,8억원을 서너번에 걸쳐 (김 전 부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의 핵심 내용을 검찰에 실토했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3월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 전 부원장의 공판에서 ‘가짜 변호사’가 변심의 자극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유 전 본부장은 “2021년말 (이 대표의 대선) 캠프에서 김모 변호사가 왔는데, 제 변호를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제가 아는 정보들을 물어봤다”며 “그 다음에는 ‘그 분이 보내서 왔다’며 전모 변호사가 왔다. 조금씩 쌓이다가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변호하기보다 정보만 캐가는 변호사들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는 취지다.

진술 바뀔 때마다 등장…檢, “증거인멸 정황”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 전 부지사의 재판 파행과 관련해 "극단적 증거인멸이자 사법방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스1.

‘감시용 변호사’, ‘가짜 변호사’ 논란은 핵심 피의자들이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 주로 터져 나왔다. 현 변호사의 재판기록 유출 의혹 사건은 지난 1월 해외도피 중 검거돼 돌아온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그 지시를 받은 쌍방울그룹 실무자들이 대북송금 자금 형성 경위와 북측에 전달하는 과정에 대한 진술을 검찰에 쏟아내던 시기였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낸 전모 변호사가 유 전 본부장을 위한 선임계를 냈다가 해임된 것도 유 전 본부장이 진술을 바꿔가던 지난해 9~10월 경이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공공연하게 변호인들이 회사 등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하지 못하도록 의뢰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 너무 노골적이 돼가고 있다”며 “변호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재명 대표 영장 재청구시 증거인멸 사유로 기재되는 등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9일 “보스에게 불리한 법정 진술을 하는 것을 입막음하려는 것은 마피아 영화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증거인멸 시도고 사법 방해”라고 비판했다.

허정원ㆍ최모란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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