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할 건데" 2년 전 졸속 법개정, 순직 해병 수사 논란 키웠다
수해 지원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과 관련한 사건 처리 과정이 소모적 법리 공방으로 번졌다.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 개정안 시행되면서 군내 사망 사건의 수사ㆍ재판권이 민간으로 이양됐지만, 제도 상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군 안팎에선 혼란의 배경에 대해 “2021년 5월 고(故)이예람 중사에 대한 성추행 사건 부실 수사와 관련한 비난 여론을 돌파하기 위해 한 달 만에 개정안을 급조할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란 말이 나온다. 실제 당시 국회 회의록엔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우려가 반복적으로 묵살됐던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사권 민간에 있는데…軍, 사실상 자체 수사
군은 지난달 19일 채 상병이 순직하자 해병대수사단을 투입해 사건 경위를 공식 ‘수사’했다. 그런데 군이 수사를 할 수 있는지부터 논란이 됐다. 애초에 성추행과 사망 사건 등의 수사권을 민간에 넘기도록 법을 개정한 이유가 군의 축소·은폐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군 역시 “수사권은 민간에 있다”면서도, 해병대수사단의 초동 대처는 “군의 공식 수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순은 근본적으로 법 규정의 모호성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는 (민간)법원이 재판권을 가진다”고 돼 있을 뿐 수사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수사권에 대해선 별도 대통령령(제32520호)에서 ‘상호 협력’을 명시한 게 사실상 전부다.
“재판ㆍ수사권은 다르다”…“왜 걱정하나 모르겠다”
이는 입법 과정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2021년 8월 23일 국회 법사위 1차 법안심사소위에서 야당이던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재판권과 수사권은 완전히 다르고, 재판권이 거기(민간)에 있다고 수사권이 민간 사법경찰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위원장이던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당연히 잘 하실 건데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추가 논의 없이 회의를 산회시켰다.
야당은 다음날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무소속 김남국 의원은 “더 시급하게 개혁을 해야 한다는 국민 목소리에 귀를 좀 기울이라”며 법 개정과 시행을 더 앞당기자고 주장했다. 이후 문구 심사는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지시 번복과 항명…하위 규정 총동원
이종섭 장관은 지난달 30일 수사 결과를 보고 받고 사건의 경찰 이첩을 결재했다가, 하루만에 “이첩을 보류하라”고 뒤집었다. 하지만 해병대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은 그대로 사건을 경찰에 넘겼고, 군 당국이 그를 ‘집단항명의 수괴’로 입건하면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박 대령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대해 “장관의 명령을 직ㆍ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 법무관리관의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 내용만을 전달받았다”고 입장문에서 밝혔다. 반면 국방부는 “관련자의 혐의를 적시해 사건을 이첩할 경우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삭제를 지시하고 이첩을 보류시켰다”는 입장이다.
이첩과 관련해서도 군사법원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에 양측은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국방부조사본부령, 국방부훈령 등 하위 규정을 총동원하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검수완박’ 급했던 민주…초안엔 ‘검찰’도 없었다
정치권에선 “여당이던 민주당이 2021년 당시 군사법원법 개정을 ‘검수완박’으로 상징되는 검찰 개혁의 다른 계기로 삼으려고 법 개정을 지나치게 서두르면서 발생한 일”이란 평가도 나온다.
실제 당시 법안심사소위에 보고된 개정안 초안에는 수사를 이첩하는 대상이 ‘경찰과 공수처’로만 한정돼 있었다. 당시 속기록을 보면 회의에선 검찰이 이첩 대상에서 빠진 이유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법사위 전문위원은 “수사권 조정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조문을 만들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어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을 해야 의결을 하지 않겠느냐”(유상범 의원), “의결만 하려면 뭐 하러 있느냐”(권성동 의원)는 등 항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의결을 못하면 내일 본회의를 못 한다”(김종민 의원)며 의결을 종용했고,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박주민 의원은 일부 ‘반대’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가결을 선포했다.
그리고 심도 있는 논의가 생략된 채 본회의에 상정된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발의 한 달 만인 2021년 8월 31일 국회 과반 의석을 점유했던 당시 여당의 주도로 찬성 135인, 반대 63인, 기권 29인의 결과로 통과됐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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