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법례는…미국, '로버트 김 사건' 때 동맹국에도 중형 [70년 된 간첩죄, 이제는 바꾸자 ②]
법원행정처 "동맹국과 적국의 간첩을
일률적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라지만…
미국, '로버트 김 사건'에 간첩죄 적용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 한정에서 동맹국·우방국 등 외국 일반으로 확장하고, 보호법익도 군사기밀 뿐만 아니라 산업기밀까지도 포괄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부터 불과 한달여 뒤에 제정된 형법, 그 형법 제98조에 규정된 간첩죄는 70년째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내려오고 있다. 온국토가 전쟁의 폐허였던 제정 당시와, 반도체 선진국으로 세계 공급망의 일원이 된 지금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우리의 기밀을 노리는 외국이 늘어났고, 보호 대상인 기밀도 많아졌다는 점에는 여야 간에 이견이 없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동맹국의 간첩과 적국의 간첩을 일률적으로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과연 이같은 우려는 타당할까.
일명 '로버트 김 사건'은 미 해군정보국(ONI) 분석관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이 당시 주미대사관 무관이던 백동일 대령에게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이 강릉 해안에 좌초돼, 인민무력부 정찰국 특수부대원 26명이 강원 내륙으로 깊숙이 침투해 49일간 대(對)간첩전이 전개됐던 충격적인 사건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 잠수함이 어디서 어떻게 와서 강릉에 좌초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로버트 김이 미 해군정보국이 탐지한 북한 잠수함 관련 동향을 백 대령에게 알려줬다. 그 후 로버트 김은 FBI에 체포됐으며, 백 대령은 추방됐다. 미 연방법원은 간첩죄를 적용해 로버트 김에게 징역 9년에 보호관철 3년을 선고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 관계이며,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우리가 당사국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대(對)간첩전을 치르고 있는 동맹국에 정보를 유출한 로버트 김을 동맹국·우방국·적국 여부를 가리지 않고 간첩죄를 적용해 처벌한 것이다.
미국 '외국을 이롭게 하기 위한' 규정
영국 '외국의 이익을 위해'라고 정의
독일 '타국의 첩보기관을 위해' 조항
프랑스 '외국 정부와의 내통' 분류
실제로 해외 입법례를 살펴보면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에 한정하고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은 적국과 동맹국·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간첩죄의 대상을 외국 일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형법 제793조에서 '국방기밀의 수집·발송 또는 멸실', 제794조에서 '외국 정부를 이롭게 하기 위한 국방정보의 수집 또는 제공', 제795조에서 '국방시설의 촬영 및 묘사', 제796조에서 '국방시설의 촬영을 위한 항공기의 사용', 제798조에서 '국방시설의 사진의 출판 및 판매' 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제794조가 '외국 정부를 이롭게 하기 위한'으로 규정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적국이 아닌 외국 일반을 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간첩 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영국의 공적비밀법은 제2조에서 간첩의 정의를 "영국의 영역 내외에서 영국의 안보 또는 국익을 손상하는 범죄를 직·간접적으로 행하기 위해 외국에 고용되거나 외국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행위를 하거나 시도하거나 충분한 혐의가 있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역시 간첩 행위의 대상을 '외국 일반'으로 규정하고 있는 입법례에 해당한다.
독일 형법 제99조는 "타국의 첩보 기관을 위해 국가기밀의 탐지·수집과 그외의 첩보 활동을 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의 상대방을 "타국"으로 규정해, 적국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
프랑스 형법은 간첩죄를 △외국 정부에 자국의 영토 및 국방력을 인도한 경우 △외국 정부와의 정보 내통 △외국 정부에 정보 인도 △파괴 행위(사보타주) △허위정보제공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영토 참절·시설제공 이적·간첩 행위 등은 적국에 제한하지 않고 '외국 정부' 일반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호정 법무법인 태하 고문변호사는 '국가정보연구'에서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과 같은 선진국들은 처음부터 '적국'을 간첩죄의 성립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형법상의 간첩죄의 구성요건에서 '적국을 위하여'라는 주관적 요건을 삭제하고, 외국의 입법례와 마찬가지로 그 대상이 적국이든 외국이든 구분할 필요 없이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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