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악마화 정치를 멈추려면

2023. 8.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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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 정치의 문제는 진영 정치 넘어 혐오 정치로 악화…
지난 대선부터는 상대를 악마화해 반사이익 취하려 하고 있어

내년 총선 앞두고 상대 정당 겨냥해 더욱 기승 부릴 가짜 뉴스부터 근절해야…
관건은 정확한 정보와 데이터 확보

그러나 정당과 국회의 인프라 취약해 과학적 정책 생산능력 없어…
미국처럼 입법 지원조직 강화해야 정치 변화 기대 가능

한국 정치는 왜 맨날 이 모양인가?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부터 고쳐나가야 하는가? 한국 정치 전공자로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한때는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묻는 물음에 진영 정치라고 답했다. 남북 관계와 같은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환경, 문화 등 모든 이슈를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 정치의 틀 속에서 인식하고 다퉜다. 이념은 모든 이슈를 하나의 틀 안으로 녹여 내는 인식의 용광로와 같았다. 모든 쟁점을 진보 대 보수라는 하나의 틀을 통해 보려 하니 사회 갈등 구도는 매우 단순하고 치열했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가릴 것 없이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을 달리했다.

어느 순간부터 진영 갈등은 인지적 차이를 넘어서 정서적 문제로 변질했다. 상대 진영 지지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넘어 그냥 존재 자체가 싫은 사람이 됐다. 이론상 꾸준히 소통하다 보면 인식의 차이는 줄일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진영 간 대화는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만 낳았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진영 정치를 넘어 혐오 정치로 악화했다.

지난 대선부터 반사이익 정치라는 표현을 부쩍 자주 쓴다. 각 진영이 자신의 능력으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상대를 악마화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취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혐오 정치가 상대방 존재를 있는 그대로 싫어했다면, 악마화 정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악마와 같은 존재로 만들려 한다.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상대방 잘못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상대를 악마화하기 위해 가짜 뉴스도 서슴없이 활용한다. 4차 산업혁명과 뉴미디어 시대는 가짜 뉴스를 양산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탈진실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누구나 쉽게 양산하고 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악마화 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정당은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을 개발하기보다는 상대 정당을 악마화할 방안을 찾기에 집중할 것이다. 악마화 정치를 멈추려면 가짜 뉴스부터 근절해야 한다. 여야 모두 가짜 뉴스 유포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직후 데이터에 근거한 국정 운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해 공공의사 결정이 데이터에 기반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악마화 정치를 멈추려면 가짜 뉴스를 근절해야 하고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하지만 바르지 못한 것들은 그 바르지 못함을 금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름을 세움으로써 경계할 수 있도다.” 조선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김탁환 ‘방각본 살인 사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당시 한 신하가 시중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서가 떠돌고 있으니 이를 모두 수거해 불태워야 한다고 했을 때 정조가 한 말이다. 그러면서 정조는 백성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양서를 많이 보급하라고 지시했다.

가짜 뉴스 유포자를 엄벌한다고 가짜 뉴스를 없앨 수는 없다. 무엇이 가짜인지 식별하기 쉽지 않은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 문제를 완화하는 최선의 방안은 정조의 가르침대로 정확한 정보와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정당이 가짜 뉴스에 기대어 악마화 정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정당과 국회의 정책 인프라가 취약한 탓이 크다.

우리 국회의원은 8명의 보좌진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하원의원은 최대 18명, 상원의원은 34명 정도의 보좌관을 채용할 수 있다. 국회의 입법 지원 인프라 또한 매우 취약하다. 입법조사처에서 126명 그리고 예산정책처에서 138명이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의회조사국(CRS) 600명, 의회예산처(CBO) 275명, 회계검사원(GAO) 3170명, 상하원 위원회 2700명이라는 거대한 입법 지원 조직을 갖고 있다. 미 의회가 우리 국회보다 전문성과 행정부에 대한 자율성이 더 높은 이유다. 우리 정치의 정책 인프라를 강화해야 악마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썩 내키지는 않으나 그나마 우리 정치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고육지책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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