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우리는 새만금 야영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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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피부를 찌르는 것처럼 따갑다.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생존 위기에 몰린 인류의 모습을 축소해 놓으면 새만금 야영장의 그 위태로운 청소년들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만금 야영장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만금 야영장을 닮은 이 지구에서 탈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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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피부를 찌르는 것처럼 따갑다. 한낮에는 바깥에서 몇 분도 못 버틸 지경이다. 야외 활동은커녕 여행조차 어렵다. 이 여름은 예외적인 것일까. 내년, 아니 10년 후 여름은 어떨까.
이 폭염을 통과하면서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지만 긴급한 행동이나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보다 전북 새만금에서 열리는 잼버리 대회 얘기로 시끄럽다. 그늘도 없는 야영장에서 땡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청소년들을 보면서 다들 위험하다고, 빨리 이동시켜야 한다고, 그동안 준비를 어떻게 한 거냐고 목청을 높인다.
‘새만금 야영장의 아이들’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인류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생존 위기에 몰린 인류의 모습을 축소해 놓으면 새만금 야영장의 그 위태로운 청소년들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만금 야영장에 있다. 그런데도 조용하다. 이 무감각은 폭염보다 더 위험하다. 2023년의 여름은 확실히 사납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후 재난 소식도 심상치 않다. 하지만 기후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폭염 대책이나 재난 대책 정도를 넘어서는 기후 대책이 필요한데 이를 이끌어낼 힘이 보이지 않는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1990년 기후위기 첫 보고서를 낸 뒤로 30여년이 지났다. 경고음은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다급하게 울린다. 그렇지만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기후운동, 기후정치, 기후거버넌스는 여전히 미약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실감은 분명해지는 데 비해 기후대응은 아직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길을 못 찾고 있는 느낌이다. 걱정하는 시민들은 에어컨 자제나 대중교통 이용 같은 개인적 실천에 매몰돼 있다.
기후위기 해법은 단순하게 제시돼 있다.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면 된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가는 동시에 모든 에너지원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한 해법을 실현하기가 지독하게 어렵다.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를 깨트려야 하고, 눈앞의 선거가 최우선인 정치의 논리를 넘어서야 하고, 자국이기주의가 판치는 국제정치를 재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 문제는 모두에게 가장 심각한 것이지만 누구에게도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안 된다는 점에서 더욱 어렵다. 기후 문제가 직면한 딜레마를 모두의 문제라서 아무도 자기 문제로 여기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나 단기적 시야에 갇혀 장기적 문제를 못 보는 ‘시야의 비극’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기후 문제는 생각할수록 답답하지만 정치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이들을 행동하게 만들지 못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 차원의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정당, 지방자치단체, 기업을 압박해 대응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기후에 정치적 생명을 거는 정당과 정치인, 지방정부, 시민단체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만금은 갯벌을 없애고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간척지다. 한국은 여기에 지구촌 청년들을 초대해 축제를 열었지만 그 축제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준비 부실에 폭염, 태풍 등이 겹치면서 참가자들은 새만금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했다. 하지만 우리는 새만금 야영장을 닮은 이 지구에서 탈출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맞게 될 미래를 이번 폭염이 경고하고 있다. 더 더운 여름, 더 잦은 기상 재난이 우리의 야영장을 습격할 것이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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