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섬긴다” 배달까지… 찜통더위 쪽방촌 주민의 생명줄

이현성 2023. 8. 10. 0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식당 단골들은 쪽방촌 주민이다.

"아 덥다 진짜." 쪽방주민 김기식(81)씨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맛집식당에 들어섰다.

쪽방촌 주민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민간 식당에서 매일 8000원짜리 식사를 할 수 있다.

동행식당과 쪽방주민들은 상생하고 있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동행식당’ 순례기
서울 중구 쪽방촌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8일 자신의 쪽방에서 ‘동행식당’ 배달 음식을 꺼내고 있다. 아래는 같은 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동행식당에서 냉면을 먹고 있는 쪽방주민.


식당 단골들은 쪽방촌 주민이다. 이들의 집으로 배달을 가는 식당도 있다. 공통점은 사장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서울 최고 기온이 36도에 달했던 8일 방문한 ‘믿음의 밥집’들은 쪽방촌 주민들의 생명줄이 되고 있었다.

“아 덥다 진짜.” 쪽방주민 김기식(81)씨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맛집식당에 들어섰다. 자리를 잡은 김씨는 빨간 모자를 내려놓으며 물냉면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10분 만에 비웠다. 능숙하게 믹스커피까지 타서 마신 뒤 식당을 나섰다. 뒤이어 온 노종수(79)씨도 냉면을 주문했다. 맨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갈색 조끼만 걸친 노씨는 냉면을 다 먹은 뒤 그릇에 냉수까지 부어 마셨다.

계산할 땐 모두 똑같은 연두색 카드를 내밀었다. ‘동행식당’이라고 쓰인 카드였다. 동행식당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사업 중 하나다. 쪽방촌 주민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민간 식당에서 매일 8000원짜리 식사를 할 수 있다. 현재 서울 지역 5개(영등포·남대문·창신동·서울역·돈의동) 쪽방상담소 인근 식당 43곳이 동행식당으로 지정돼 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동행식당도 있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중구 샬롬식당 사장 홍종은(57)씨는 도시락 포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홍씨는 김치찌개와 오징어볶음 등을 담은 도시락 13개를 승합차에 싣고 서울역 인근 쪽방촌으로 향했다.

동행식당 현판.


목적지에는 5분 만에 도착했다. 배달을 기다린 주민들은 동행카드로 음식값을 지불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거동이 어려운 이들에겐 홍씨가 직접 음식을 날랐다. 첫 배달지는 1층이었지만 실제로는 반지하에 가까웠다. 반쯤 열려 있던 문을 완전히 열자 푹 꺼진 방에 있던 주민이 보였다.

이곳 주민들은 폭염에도 겨울부터 쓰던 털이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위를 피할 방법은 선풍기뿐이었다. 이불 위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이분들은 다리가 아파서 어디 나가질 못해요. 주민들에게 이 밥은 생명줄입니다.” 홍씨는 주민들이 아프면 메뉴에도 없는 죽을 끓여다 주기도 한다.

홍씨는 서울 중구 일신감리교회(윤동규 목사) 교인이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내의 권유로 2년 전 교회에 처음 나갔다고 했다. 홍씨는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을 생각하며 쪽방주민에게 음식을 건넨다고 했다.

처음 갔던 맛집식당 사장도 권사였다. 문래동감리교회에 다니는 송복이(63) 권사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씀을 품고 쪽방촌 주민을 맞이한다고 했다.

동행식당에 유쾌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씻지 않은 이들이 오면 다른 손님들이 오길 꺼린다고 한다. 낮술을 하고 온 이들이 식당에 토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지친 송 권사는 지난해 9월 한 달간 장사를 접기도 했다.

“쪽방상담소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장님은 권사님이잖아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같더라고요….” 김형옥 영등포구쪽방상담소장의 권면에 송 권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섬기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송 권사는 “우리 가게 손님 절반은 쪽방주민”이라며 “이젠 정이 들었다. 이들이 저녁에 또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면 무료로 밥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동행식당과 쪽방주민들은 상생하고 있었다. 6.6㎡(약 2평) 남짓한 방에 갇힌 이들은 동행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난다. 이날 몇몇 쪽방주민은 주머니를 털어 식당에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샬롬식당에서 만난 양삼준(74)씨는 “동행식당이 생기기 전엔 집에서 라면을 먹거나 무료급식소를 전전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에 고맙고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