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자치와 자율, 마을과 지방이 대한민국 소생 지름길이다
대한민국 최중심 문제, 인구②
인구문제에 대해 주목해야 할 다음 선현은 몽테스키외다. 그는 높은 탁견과 통찰을 통해 인류에게 삼권 분립을 포함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결정적 토대를 제공한 최고 현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인구문제에 대해서도,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깊이 경청할만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두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결혼이 이루어진다. 즉 자연은, 생존의 어려움에 의해 저지되지 않는다면, 인간을 충분히 결혼으로 이끈다. 인간은 안전한 생활공간이 제공된다면 기본적으로 결혼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결혼 거부가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보장조차 넘어서는 인위적 장애 요인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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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기근 인한 감소는 회복 가능
악습·악정이 초래한 감소는 불치
서울 집중, 결국 어떤 결과 빚었나
중앙집중·승자독식은 국가 자살
」
그에 따르면 신흥국민은 번식하여 그 수가 크게 증가한다. 그러나 국가가 틀을 갖추면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이 견해 역시 주목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신흥국가들은 인구의 빠른 증가를 경험하고, 선진국가들은 출산의 감소를 목도한다. 또, 한 나라에서도 초기에는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다가 발전 및 성숙을 한 뒤엔 인구가 정지되거나 줄어드는 현상이 발견된다. (인간 욕망체계의 진화 및 문명의 발전·성숙과 관련하여 이 문제에 대해선 매우 깊은 견해들이 나와 있다. 이 난제는 뒤에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몽테스키외는 빈곤한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갖는다면서, 이는 신흥국민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유비한다. 그러나 부와 출산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인식은 훗날 경험적으로 반대와 지지의 흐름 모두에 직면했다.
결혼과 출산은 자연적 인간 본성
몽테스키외는 통치의 가혹함은 자연적 감정을 파괴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는 자식이 자기가 경험한 그토록 잔인한 주인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낙태를 하지 않았는가 말한다. 이때 그가 말하는 통치는 지배나 인간관계의 동의어다. 또는 정치·정부와 같은 뜻이다. 인간공동체의 가혹성이 초래하는 인간의 사회적 성정이 생래적 인간 본성을 억누르고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출산 거부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몽테스키외의 견해는 국가체제의 성격과 인구문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나라가 작은 단위의 자치 체제들(그의 표현을 빌리면 ‘작은 공화국’)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주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인구를 늘리기 위한 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고대의 최고의 철학자가 왜 일정 규모의 인구수(플라톤은 『법률론』에서 5040명을 말한다. 그러나 플라톤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언급은 약간 논란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를 언급했는지 예거한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설명과 주장은 경험적 사례에서 더욱 선명하다. 그는 인구문제에 관한 한 작은 도시와 작은 공화국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말하는 공화국은 오늘날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자치·자유·자율성을 갖는 마을이나 도시, 또는 지방이나 지역 단위체를 의미한다. 그가 볼 때 그리스는 도시로 이루어진 국가였다. 그들 작은 도시들과 작은 공화국들은 안으로는 시민의 행복을 목표로 삼았다. 작은 영토와 큰 행복으로 인해 시민의 수는 증가하였다. 이탈리아·시칠리아·소아시아·스페인·갈리아·게르마니아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작은 (공화국) 국민으로 가득했고, 그리하여 주민들은 넘쳐났다. 따라서 주민들을 증가시키기 위한 법은 필요하지 않았다.
로마 시대의 인구 늘리기 정책
그런데 이 모든 작은 자치 공화국들이 하나의 큰 공화국에 합병되자 인구가 감소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 승리 전후의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상태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큰 공화국은 도시나 지방의 자치와 자율을 박탈한 단일한 중앙 집중 정부를 말한다. 그는 티투스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를 인용하면서 옛날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지방이 황야로 변모했음을 언명한다(리비우스). 또, 신탁을 받을 장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신탁은 끝났다고 말한다(플루타르코스). 이는 신탁을 받을 인간의 소멸로 더는 신탁을 내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신탁이 끝났다’는 말은 인간 문제와 인간의 물음에 대한 모든 응답의 완전 중지를 뜻한다. 지금 우리의 숱한 마을과 지방과 도시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는 물론 신탁과 응답의 중지상태로까지 들어가고 있다.
그는 로마인은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진단한다. 그리고는 인구 상실을 회복하기 위한 로마의 노력을 상세히 열거한다. 그는 내부 분란과 삼두정치와 추방제도가 로마가 행한 어떤 전쟁보다도 로마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켰다고 본다. 그 결과 시민들은 얼마 남지 않았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내전 후에 호구조사를 실시했을 때 가장은 15만 명에 불과했다. 결국 로마는 많은 법률과 제도, 특혜와 특권, 처벌과 제약을 통해 시민들을 결혼시키고 출산을 장려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나라의 영속을 위한 당시의 특권과 특혜들을 보면 오늘 우리 사회의 편견과 논란은 부끄러울 정도이다.
몽테스키외는 당시의 법과 제도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한 가지만을 소개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인구주택 총조사를 의미하는 현상과 단어(census)의 출발이 로마이며, 그를 관장하는 독립적 직위(censor, 감찰관·인구총감·호구총감이라는 뜻)를 따로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직접 이 직위를 맡으려고까지 했다. 오늘날 대통령이 인구 부총리나 인구부 장관 직을 설치하고 이를 직접 맡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는 한국의 경우 난제 중의 난제인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 부총리나 인구부의 설치가 필수라고 본다.)
대한민국, 안락사로 가지 않으려면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시민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로마의 규칙들은 공화국 제도가 충실한 역량을 갖고 있어서, 용기나 대담성이나 단호함이나 명예에 대한 사랑이나 덕성에 의해 손실을 회복할 동안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현명한 법과 조치들도 죽어가는 공화정체를 포함하여 통치와 정치가 무너뜨린 것을 회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에게 가장 쓰리고 아픈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말한다. 인구감소는 많은 작은 자치·도시·지방 공화국들을 끝없이 중앙으로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는 인류의 인구문제를 일별한 뒤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한다. 옛날에는 프랑스의 모든 마을이 수도였다. 오늘날에는 커다란 수도 하나밖에 없다. 예전에는 국가의 모든 부분이 권력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중심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이 중심이 국가 자체인 것이다.
권력도 자원도 교육도 병원도 주택도 금융도, 한마디로 힘과 돈과 기회가 모두 서울로 몰려, 산업화 시기의 ‘서울 집중’과 민주화 이후 시기의 ‘수도권 집중’이라는 두 단계를 거치면서 지금 한국 공동체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이 차례대로 중앙집중 심화→지방 황폐화→지방소멸→최악의 서울 출산율→국가 전체 인구절벽→인구소멸(→국가소멸)로 가는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민들에게 이 현자의 마지막 결론은 가장 무섭다. 국가의 인구수가 특수한 사건·전쟁·페스트·기근으로 감소하는 경우에는 구제할 길이 있다. 남은 사람들이 이 불행을 만회하려는 노동과 근면의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감소가 내적 악습과 악정에 의해 오래 지속할 경우 불치병이 된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린 만성 질병으로 소멸한다.
정녕 더 중앙 집중하고, 더 진영으로 갈라지고, 더 승자 독식하고, 더 저질스럽게 적대하며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려는가? 그 불치병은 대한민국을 안락사라는 끝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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