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TSMC와 대만의 인재 욕심
모두의 을(乙), 그래서 누구도 못 건드리는 수퍼 갑(甲). 대만의 ‘실리콘 쉴드’(반도체 방패)인 TSMC 얘기다.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TSMC는 애플·엔비디아·AMD·퀄컴 등 쟁쟁한 ‘갑’ 고객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 주는 ‘을’이다. 하지만 이 을이 멈추면 전 세계 인공지능·클라우드·전기차 시장이 줄줄이 타격을 입는다. 기업 하나가 한 국가의 안보는 물론 세계 경제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 경우가 또 있을까.
TSMC를 설립한 건 모리스 창(92). 중요한 건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한 대만 정부의 인재 영입 작전이다. 1980년대 대만은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중년의 대만계 미국인 창을 타이베이로 모셔왔다. 그러고는 반도체 산업 청사진 그려달라 했다. 대만을 수시로 외면하던 미국이나 유엔에 의지하기보다 첨단 기술 제조업에서 자강의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때 영입한 인재가 또 다른 인재들을 끌어와 키운 TSMC는 현재 시가총액(4900억 달러, 약 645조원) 세계 10위 안에 드는 ‘반도체 수퍼 갑’이다.
대만이 요즘 다시 인재 영입으로 바쁘다. 이번에도 TSMC가 앞장섰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TSMC가 독일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유럽의 인재를 빨아들여 대만으로 유입하기 위해서다. 대만은 지난 5월 전 세계 500위권 대학 학부생이 대만 반도체 기업의 면접만 통과하면 석·박사 학위 없이도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했다. 파격적이란 평가가 쏟아진다.
경제·금융·IT 등 전문 분야 외국인들에게 발급하는 비자(골드카드)도 있다. 대만계 미국인이던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도 골드카드로 타이베이에 산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요즘 인구 2350만의 대만을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창업 허브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대만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한 구글·마이크로소프트까지도 IT 인재들을 빨아 들이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정부는 올해 첨단산업 인재를 위한 비자(E-7-S)를 신설해 발급 중이다. 이민청 계획과 함께 방향을 잘 잡긴 했지만, 한국이 대만·싱가포르·일본 등 경쟁국보다 더 살고 싶은 나라일지는 미지수다. 외국인 기술창업자들에게 발급되는 비자는 1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조건도 까다롭다. 이민자를 주로 저임금 노동력 확보 수단이나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보는 사회가 첨단 기술 인재들에게 매력적이긴 어렵다. 코로나 이후 촉발된 대이민(Great Immigration) 시대에 이들에게 호의적인 나라는 한국 말고도 많다.
박수련 IT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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