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射不主皮(사부주피)

2023. 8.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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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과녁의 어원은 ‘관혁(貫革)’에 있다. 고대에 군자의 스포츠였던 활쏘기를 할 때 두꺼운 베로 만든 과녁판 가운데에 가죽(革:가죽 혁)을 붙여서 표적으로 삼고, 이 표적을 꿰뚫는(貫:꿰뚫을 관) 것을 ‘관혁(貫革)’이라고 부르던 것이 음운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과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원래 활쏘기는 ‘貫革’, 즉 가죽을 꿰뚫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않고 맞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과녁을 맞히는 일은 훈련과 연습만 하면 다 할 수 있지만, 꿰뚫기는 선천적으로 힘이 센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력’에 대한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맞히는 것’을 평가 척도로 삼은 것이다.

맞히면 됐지 뚫을 필요까지야. 射:쏠 사, 主:주로 주, 皮:가죽 피. 34x73㎝.

주나라가 쇠락하여 제후들이 할거하는 폭력의 시대인 춘추시대가 되자, 사회에 ‘힘’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활쏘기에서도 과녁을 뚫어버리는 ‘힘’을 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에 공자가 탄식하며 “사부주피(射不主皮)” 즉 “가죽(과녁)을 꿰뚫지 않은 것이 옛 활쏘기의 도(道)”였음을 강조하였다.

선천적 체력의 우세마저도 배제하고 순전히 ‘노력의 결과’만을 평가하고자 한 ‘사부주피’의 정신을 살려, 오늘날 우리의 학생 평가도 부모의 영향력이 개입될 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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