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87) 울며 잡은 소매
2023. 8. 10. 00:40
울며 잡은 소매
이명한(1595∼1645)
울며 잡은 소매 떨치고 가지 마소
초원(草原) 장정(長程)에 해 다져 저물었네
객창(客窓)에 잔등(殘燈) 돋우고 새워보면 알리라
-병와가곡집
부끄럽다
병자호란 때의 척화파로 중국 심양에 잡혀갔던 이명한(李明漢)이 남긴 사랑 노래다. 아득한 초원에 해마저 거의 저물었으니 울며 잡은 소매를 뿌리치지 말아 달라고 한다. 낯선 땅 숙소의 흐릿한 등불을 돋우며 밤을 지새면 그제사 내 마음을 알리라 한다.
이 시조는 우리 민족의 대표 민요인 아리랑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의 정서나, 한국인의 대표적 애송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노래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는 정서와도 상통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준비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폭염과 위생 논란 등으로 영국, 미국 등의 대원들이 철수하는 망신을 자초하더니 마침내 태풍의 내습으로 전체 참가자가 일찍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이 “잼버리 100년 역사상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니 부끄럽다. 초원 장정에 아직 해가 다 저문 것은 아니니 최후의 일정이나마 최선을 다할 일이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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