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쇠옥성

2023. 8. 1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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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류 명창들의 성음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고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타고난 음색도 있겠지만 워낙 공을 들여 노력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하게 들리는 경지다. 그런데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는 실제 어떨까. 구하기 쉬운 스테인리스 쟁반과 유리구슬로 시험해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질이 달라 나오는 음색도 다르다.

스테인리스보다 은은 탄성이 두 배 가까이 좋다. 밀도로는 옥이 유리보다 30% 더 묵직하다. 구슬이 쟁반 위에서 굴러가며 역학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고 이에 의해 쟁반은 진동한다. 크기가 같을 때 무거운 옥구슬이 더 큰 에너지를 가하고 탄성 좋은 은쟁반은 더 넓게 진동할 것이다. 구슬과 금속 쟁반의 조합이 하나의 타악기라면 은과 옥은 단어가 주는 귀한 어감뿐 아니라 더 좋은 악기 재료가 되리라.

과학 산책

이를 바탕으로 옥구슬을 은쟁반 위에 굴리는 가상 실험을 마음속에서 해보자. 그 데굴데굴 소리에는 탄성 좋은 은쟁반이 공명하며 만드는 통통한 저음과 묵직한 옥구슬이 은쟁반 표면을 누르며 사각사각 내는 고음 등 많은 요소가 섞여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잡음이 적당히 조합되어 들릴 때 만족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캔버스에 붓질하는 소리, 대나무 숲 바람 소리, 개울물 소리, 고요한 해변의 파도 소리 등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느낌을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고 부른다. 뇌에 전달된 청각 신호가 긍정적인 신호를 생성해 온몸에 퍼져 보낸다. 예쁘고 맑으며 구수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명창들의 소리에 은쟁반과 옥구슬은 가히 적절한 비유다. 더 나아가 명인과 비르투오소 연주가들이 내는 공력 있는 소리가 복잡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데에는 산과 바다에서 접하는 힐링의 소리와 같이 자연스러운 면모를 갖춘 것이 중요할 것이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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