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 대출 규제 풀리는데 전세 시장 어디로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8. 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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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 껐지만 월세 전환 못 막을 듯

역전세난으로 골치 아팠던 집주인들의 숨통이 트일까. 정부가 역전세 보증금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전세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린다. 역전세는 2년 전 전세 계약 때보다 전셋값이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상황을 의미한다.

집주인 대출 규제 완화

DSR 40% 대신 DTI 60% 적용

금융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역전세 반환대출 규제 완화 방안에 따르면 전세금 반환이 어려워진 집주인에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대신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DSR은 모든 금융권 대출을 포함해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을 계산하지만 DTI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다. 해당 주택담보대출 이외 다른 대출은 이자 상환분만 반영한다.

일례로 다른 대출이 없고 연소득 5000만원인 집주인이 금리 연 4%, 30년 만기로 대출받으면 기존보다 대출 한도가 1억7500만원가량 늘어난다. 연소득이 1억원일 경우 대출 한도는 3억5000만원으로 커진다.

집주인이 임대사업자인 경우에는 RTI(임대수익이자상환비율)를 1배로 하향 조정한다. RTI는 연간 임대소득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임대사업자의 대출 적정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종전까지는 주택 임대업은 RTI 1.5배, 비주택은 1.25배를 지킨 경우에만 신규 대출이 가능했다.

대출 지원 대상은 규제 완화 방침이 나온 7월 3일 이전 임대차 계약이 체결돼 내년 7월 31일까지 계약 기간이 끝나는 집주인으로 한정한다. 대출 한도는 원칙적으로 전세금 차액 즉 기존 전세금에서 신규 전세금을 뺀 금액이다. 전세금 반환 용도로만 대출이 가능하도록 해 은행에서 세입자 계좌로 직접 입금해준다.

집주인이 혹여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에도 완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된다. 이때 한도는 전세보증금 전액으로 하되 1년 내 후속 세입자를 구해 해당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끝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은행에서 최소 2년간 실거주 여부를 모니터링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불필요한 대출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도입한 만큼 가계부채가 급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집주인 대출이 늘면서 후속 세입자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세 반환보증 상품 가입도 의무화했다. 집주인은 후속 세입자와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을 특약으로 명시한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한다. 후속 세입자가 입주한 뒤 3개월 내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에 직접 가입하거나 세입자의 보증료를 대납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전세 시장 영향은

아파트 전셋값 회복, 빌라는 ‘글쎄’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조치로 일단 역전세난의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고 내다본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세 거래는 2021년 하반기 149조800억원, 지난해 상반기 153조900억원으로 향후 1년간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보증금 규모가 300조원을 넘어선다. 2011년 실거래가 공개 이후 최고치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리거나 전세 계약 갱신이 급증한 지역의 경우 역전세난 위험이 커졌지만 당분간은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의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년 한시 정책이기는 하지만 아파트 입주가 몰린 지역이나 전세계약갱신권이 집중된 지역의 역전세 리스크를 다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동안 급락하던 전셋값도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2분기 수도권 아파트 전세 계약 중 절반가량인 49.6%가 1분기보다 오른 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은 전셋값 상승 거래 비율이 50.8%로 절반을 넘어섰다. 경기도는 49.2%, 인천은 48%에 달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 전세는 최근 10억원에 실거래됐다. 2월까지만 해도 전셋값이 6억40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실수요가 몰리며 다시 반등했다.

정부가 역전세 보증금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전세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목이 쏠린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최근 입주 물량이 쏟아진 강남구 개포동 일대 전세 시장도 저가 매물이 소진된 후 상승 거래가 잇따르는 중이다.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 84㎡ 전셋값은 올 초 10억원에서 최근 13억원 수준으로 3억원가량 뛰었다. 역전세 대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 회복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KB부동산의 7월 전셋값 전망지수도 100.8을 기록해 지난해 5월 이후 14개월 만에 다시 100선을 회복했다. 이 지수는 KB부동산이 회원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전셋값 전망을 조사한 수치로, 기준인 100 이상이면 상승 전망이 더 많다는 의미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빌라나 오피스텔 같은 비아파트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파트 전세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아직까지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1년간 시행되는 한시적 대책인 만큼 전세 기피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셋값 전망이 불투명해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는 걸 꺼려 월세로 대거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경제만랩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 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서울에서 이뤄진 주택 전월세 거래는 27만7769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세 거래는 13만5771건으로 전체의 48.9%를 차지해 월세 거래보다 적었다. 상반기 기준 서울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거래 비중이 50%를 넘지 못한 것은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70%를 넘어섰던 서울 주택 전세 비중은 계속 감소세를 보이더니 결국 50%선까지 무너졌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지는 점도 변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772가구에 달한다. 오는 8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2990가구)’, 11월 개포 ‘디에이치아너힐즈(6702가구)’ 등 대단지 입주가 쏟아지면서 강남 전세 시장이 출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번 대책이 빌라 임대차 시장의 역전세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적잖다. 집주인이 후속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들어줘야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집주인이 역전세 대출을 받으려면 전세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고 세입자 보증료까지 대납해줘야 하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월세로 바꾸겠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 전세 가격은 여전히 약세를 보이는 점도 변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기준 서울 연립주택 전세 가격은 0.31% 떨어졌다. 같은 기간 아파트 전세 가격이 0.12% 오른 것과 대비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역전세난 여파로 전세 비중이 점차 줄고 월세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빌라 수요자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데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굳이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어 월세 전환 흐름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1호 (2023.08.09~2023.08.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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