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긴축 종료’…韓 산업 영향은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8. 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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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큰 변화 어렵지만…‘최악 시기’ 끝
수출·투자 기대감…후유증 대비 만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긴축이 막바지 단계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웰스파고 등 해외 투자은행(IB)은 “추가 긴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산업계도 미 Fed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긴축 종료에 따른 이자 부담 완화, 대(對)신흥국 수출 개선 등을 기대하는 눈치다. 관련 지표들도 조금씩 회복세다. 긴축 종료가 한국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계 기업’ 등 긴축 후유증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對신흥국 수출 회복 기대감

미 내수 활력…전기장비·반도체 주목

신흥국 성장 둔화는 전 세계 무역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경기 침체를 마주한 신흥국이 외부에서 들여오는 수입량을 줄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미국 금리와 신흥국 수입량은 역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신흥국이 수입량을 줄이면,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들이 받는 타격은 불가피하다. 일례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아세안 지역 수출은 전년 대비 20.4% 줄었다. 아세안은 신흥국 국가들이 모여 있는 대표 지역이다.

다행히 긴축 종료 기대감이 커지며 대신흥국 수출 관련 불안 요인이 해소되는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긴축 종료를 기대하면서 신흥국 등 위험자산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주요 외신을 중심으로 달러를 팔고 신흥국 자산을 사는 ‘달러 캐리트레이드’ 언급도 잦아졌다. 신흥국으로 다시 자본이 유입될 조짐이 보이는 셈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 기업 수출도 점진적 회복이 가능하다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수출 회복 강도는 약하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다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한국의 수출 회복 강도는 약할 것으로 보이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수출 회복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산업 분야로는 ‘건설기계’ ‘방산’ 등이 꼽힌다. 최근 실적만 놓고 보면 이미 실적 상승 구간에 진입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2분기 연속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HD현대인프라코어도 2분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두산밥캣은 올해 2분기에 영업이익 466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50.7% 증가한 수치다.

긴축 종료 시 미국 내 유동성 확대도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는 ‘수주 기반 산업’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판단한다. 수주를 확보한 상태에서 긴축 종료와 함께 미국 내수 설비 투자가 본격화되면, 좋은 실적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표적인 수주 기반 산업이 ‘전기장비’다. 미국은 최근 ① 노후 전력 인프라 교체 ② 장거리 송배전 설비 수요 확대 ③ 이상 기후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정성 해소 등의 이유로 전력 설비 수요가 급증세를 보인다. 특히 노후 전력 인프라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미국 전력 송전망과 발전소 변압기 중 70%는 설치된 지 25년 이상 지난 상태다.

국내 대표 전기장비 분야 기업은 효성중공업과 LS일렉트릭, HD현대일렉트릭 등이다. 이들의 수주 잔고는 2022년을 기점으로 매 분기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전력 설비 수출액은 꾸준히 확대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수출 품목 반도체 출하량 개선도 기대된다. 주요 IT 기업이 미국에 몰려 있는 만큼, 미국의 긴축 종료가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지표들에서도 긍정적 신호가 감지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반도체 출하량은 전월 대비 41.1% 늘었다. 반도체 수출액은 89억달러(약 11조5000억원)로 연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D램을 중심으로 회복세다.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D램(8Gb 1G×8)의 7월 고정 거래 가격은 6월보다 1.4% 내려간 1.34달러(약 1700원)다. 제품 가격은 4월 이후 넉 달 연속 떨어졌다. 다만 하락률은 4월(-19.8%)과 5월(-3.4%), 6월(-2.8%)로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기업 짓누르던 ‘이자 부담’ 해소

설비 투자 확대 본격화할까

미국 금리 인상에 발맞춰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려왔다. 지난해 초 1%대였던 한은 기준금리는 현재 3.5%에 달한다. 통상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기업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은 기업대출 금리를 0.5%포인트 끌어올리고, 기업대출 금리가 0.9%포인트 높아지면 매출액순이익률은 연간 0.3%포인트 감소한다고 추정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속에 기업대출 금리는 연 5%를 넘어섰다. 한은 ‘6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기업대출 금리는 연 5.3%로 가계대출(연 4.8%)보다 0.5%포인트 높았다. 지난해 초(3.1%)와 비교하면 2%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설비 투자’ ‘운영 자금’ 등을 위해 대출을 활용하던 기업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이 커진 셈이다. 자연스레 공장 건설 등 대규모 비용이 소요되는 설비 투자 건들이 보류됐다. 중소기업들은 공장 건설을 전면 중단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대기업들은 ‘잠시 보류’ 등의 선택지를 택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착공식 연기, SK하이닉스의 충북 청주시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 보류 등이 대표 사례다.

최근 들어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긴축 종료 기대감에 힘입어 설비 투자를 재개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지표들도 반등세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감소세가 이어지던 설비투자지수는 지난 4월부터 3개월째 증가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 기준)는 124를 기록했다.

개별 기업으로 봐도 설비 투자 확대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14조5000억원을 설비 투자에 쏟아부었다. 역대 2분기 기준 최대 규모다. 시설 투자 중 13조5000억원이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집중됐다. LG전자도 올해 하반기 전장 사업을 중심으로 설비 투자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LG전자는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멕시코 신규 생산지를 설립 중이고 기존 운영 중인 베트남과 폴란드 공장 투자도 늘리고 있다”며 “유럽 지역 대응을 위한 신규 공장도 건설 중이다”라고 밝혔다.

긴축 종료는 한국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긍정적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후유증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영업이익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연속 이어진 ‘한계 기업’ 관리 필요성이 대두된다. 연이은 기업대출 금리 인상으로 한계 기업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우려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2분기 시중 자금흐름 동향과 주요 이슈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부감사 대상 이상 비금융 법인 가운데 한계 기업 비중은 14.4%로 나타났다. 2018년(9.8%)보다 4.6%포인트 상승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한계 기업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주거래 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 구조 개선, 자산 매각 등 선제적 구조조정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1호 (2023.08.09~2023.08.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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