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돌려막기’ 논란 일파만파…‘만기 미스매칭’에 금리 치솟자 ‘폭탄’ 돌변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8. 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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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과 하나증권 간 거래에서 촉발된 채권형 랩·신탁 ‘돌려막기(자전거래)’ 이슈가 일파만파 확산 중이다. 관련 증권사에서는 ‘불법도 편법도 아닌 합법적 거래 관행’이라 강조하지만 금융당국은 단단히 벼르는 분위기다. 당국은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착수해 불법성 여부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다.

NH·미래에셋, 금감원 검사

거래 관행 불법성 일일이 점검

금융당국과 각 증권사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KB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에 대한 현장 검사를 진행한 데 이어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검사에 돌입했다. 이번 금감원 검사는 KB증권과 하나증권 간 파킹·자전거래 의혹이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쟁점이 되는 이슈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만기 미스매칭 전략, 둘째 채권 파킹, 셋째 자전거래 등이다.

채권형 랩과 신탁상품에서 논란이 된 ‘만기 미스매칭’과 ‘채권 파킹’ 거래 구조는 이렇다.

예컨대, A증권사는 고객(대기업 등 법인)에 형식적으로는 1년 만기 CP(금리 3%)에 투자하는 신탁 상품을 판매한다. 이때, A증권사는 시장금리보다 높은 4%의 수익을 강조하면서 랩, 신탁상품을 판매한다. 시장금리가 3%인데 4% 수익 보장이 가능한 것처럼 마케팅이 가능한 이유가 ‘만기 미스매칭’에 있다. A증권사는 고객에 받은 투자금으로 상품 만기와 같은 1년 만기 CP를 사지 않는다. 그 대신, 3년 만기 CP(금리 5%)를 사들인다. 1년 만기 단기 신탁 상품이지만 실제로는 만기가 긴 CP에 투자하므로, 시장금리보다 더 좋은 조건(4%)을 앞세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1년 뒤 신탁 만기가 돌아와도 A증권사는 3년 만기 CP를 매각해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A증권사는 B증권사에 만기 2년이 남은 이 CP를 맡겼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받기로 한다. 두 증권사 간 암묵적인 합의 아래, 돌려받을 때 금리는 맡길 때 금리와 똑같다(2년 뒤 5% 금리로 돌려받는 조건). 즉, 금리 변동이 반영된 시가가 아니라 최초 매입 당시의 장부가(취득가)로 거래가 이뤄진다. 이를 ‘채권 파킹’의 ‘연계 자전거래(펀드 상호 간에 같은 자산을 같은 시기에 같은 수량으로 매도·매수)’라고 부른다. 일부 증권사는 상품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채권 돌려막기’로 보유 채권을 장부가로 매각한 뒤 환매자금을 마련해왔다.

만기 미스매칭을 활용한 운용 전략은 애당초 몇 가지 이슈가 내포돼 있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만기 미스매칭’ 전략은 저금리 국면에서는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 ‘윈윈’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금리가 급등하면서 수면 아래 있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우선, 이런 전략은 시장금리가 줄곧 하락한다는 시나리오 아래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다.

채권 수익은 크게 이자 수익과 금리 변동에 따른 자본 차익, 두 가지로 이뤄진다.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쓰면 증권사 간 장부가로 ‘채권 파킹’이 이뤄지므로 자본 차익이 거래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예컨대, 앞서 A증권사 신탁상품의 만기 1년이 지났을 때 시장금리가 0.3%포인트 하락했다고 치자. 이 경우, A증권사 상품에 투자한 가입자는 최초 약정된 4%의 금리에 0.3%포인트 금리 하락에 따른 자본 차익을 합쳐 손익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투자자는 ‘자본 차익까지 챙겨달라’는 요구를 증권사에 하지 않는다. 랩이나 신탁 같은 상품은 확정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실적연동형 상품이지만, 투자자는 사실상 확정 수익으로 4%를 챙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암묵적으로 자본 차익을 포기하는 기형적인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채권 시장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 고객인 투자자도 이런 거래 구조를 알고 있지만 시장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으므로 과거에는 별 탈이 없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문제는 금리 방향이 돌변할 때다. 채권 금리 급등으로 랩, 신탁에 편입해둔 CP, 장기채 등의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기업이 회사채 차환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유동성이 바닥나고 이후 랩, 신탁의 환매 요청이 빗발쳤다. 결국, KB를 비롯한 일부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에 ‘파킹’했던 채권을 장부가로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전거래 의혹이 금융당국에 포착됐다는 게 시장 전언이다.

위법성 여부 가리기 힘들 듯

예외 조항 해석 두고 논란

문제는 위법성 여부를 명확히 가리기 힘들다는 데 있다. 자본시장법상 자전거래는 불법 행위다. 그럼에도 이런 편법적인 거래 구조가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예외 조항’ 때문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자본시장법 제99조 시행령 등에 따르면 ▲수익자 요구에 따라 동일한 수익자의 투자일임 재산 간 거래의 경우 ▲동일한 수익자의 서로 다른 계좌(금융사) 간 매매 시 ▲수익자 이익을 해칠 염려가 없을 때 등의 경우에 한해 자전거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증권사가 예외 조항을 마치 일반 조항인 것처럼 해석하고 관행적인 자전거래를 주도해왔다는 데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선 KB증권 등도 이런 조항을 근거로 절차적 흠결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약하면, 두 증권사 간 채권 파킹을 통한 자전거래는 ‘수익자인 고객의 유동성 공급 요구에 의한 것’이며 ‘동일 수익자의 서로 다른 계좌 간 거래’이므로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만기 미스매칭’ 전략도 위법 여부를 가리기 힘들 것이라는 게 시장 중론이다. 이들 증권사가 고객에 제공한 상품 가입 설명서에는 ‘운용자산과 신탁계약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충분히 고지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수면 아래 있던 구조적 문제점이 불거졌다’는 시선이 대체적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등 정부 기금 주관 운용사로 선정되려 대형 증권사들이 채권형 랩, 신탁 규모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과당 경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연기금 OCIO(외부위탁운용관리) 주관사 선정 기준 중 하나가 랩어카운트 등 신탁 계정 운용 규모와 실적”이라며 “이번 사태 역시 법인 고객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장부가 거래를 진행하다 탈이 난 것”이라 촌평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채권 파킹과 자전거래 이슈는 2014년과 2015년, 연이어 불거졌다. 2014년 당시 ING투신운용(현 맥쿼리투자신탁운용)은 학연 등으로 얽힌 7개 증권사 브로커와 파킹거래 등을 통해 기관 투자자 수익률을 조작했던 것으로 밝혀져 입방아에 올랐다.

2015년에도 현대증권(현 KB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장 등 임직원들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줄줄이 기소됐다. 이들 역시 상품 만기보다 긴 CP를 사들이며 적극적인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펼쳤다. 당시 임직원은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현대증권은 1개월 일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채권 시장 관계자는 “채권 시장은 소수 브로커끼리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폐쇄적으로 거래하는 곳”이라며 “하나하나 문제 삼으려면 끝도 없지만 파킹과 자전거래에 대해서는 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1호 (2023.08.09~2023.08.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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