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서 한날한시에…" 안성 공사장 사망자는 베트남 형제였다
“형제가 타지에서 한날한시에 죽다니…. 기가 막힐 뿐이죠”
9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안성시 한 병원 장례식장. 송모(56)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유족 곁을 서성였다. 유족들은 베트남어로 속삭이며 눈물을 훔쳤다. 장례식장에는 이날 오전 경기도 안성시의 한 신축상가 복합건축물 공사 현장 바닥 붕괴 사고로 매몰돼 사망한 베트남 국적 A(30)씨와 B(29)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다. 이들은 형제였다.
안치실에서 형제의 시신을 확인한 A씨의 베트남 국적 아내와 친척 5명은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사망 소식을 접한 형제의 부모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형제의 부친과 동료였다는 송씨는 “아버지처럼 꿈을 갖고 한국에 왔을 텐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과 지인 등에 따르면 A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2016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해 한국 땅을 밟았다. 동생인 B씨는 지난해 7월 형을 따라 입국했다. A씨는 유학 기간 중 베트남인 아내와 결혼해 네 살배기 딸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씨는 유학을 오기 위해 빌린 돈을 갚고 양육비를 모으기 위해 불법체류자가 된 상태에서 건설 현장 등에서 일했다고 한다. B씨는 합법적으로 체류 중이었다.
형제가 동시에 세상을 떠나면서 대가 끊긴 유족의 슬픔은 깊어지고 있다. 유족은 “형제의 정자라도 채취할 수 있냐”며 의료진에게 문의했지만 “현행법상 사망자의 정자를 채취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이들은 다시 한번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이날 사고는 오전 11시 49분쯤 건물 9층 바닥 면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9층에선 바닥 콘트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지탱하던 거푸집(가설구조물)과 동바리(지지대) 등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8층에서 작업하던 베트남 형제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9층에서 작업하던 4명도 다쳤다. 4명 중 3명은 중국 국적이고, 1명은 내국인으로 모두 경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강력범죄수사대장(총경 임지환)을 팀장으로 한 49명 규모의 수사팀을 편성했다. 경찰은 현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경기지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 평택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근로감독관을 현장에 보내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또 시공사인 기성건설㈜에 대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사고 현장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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