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숨막히는 쪽방…생명줄 된 ‘믿음의 동행식당’
무료로 저녁 챙겨주는 사장님, 직접 배달하는 사장도
쪽방촌 주민이 식당 단골이다. 이들의 집으로 배달을 가는 식당도 있다. 공통점은 사장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이다. 서울 최고 기온이 36도에 달했던 8일 방문한 ‘믿음의 밥집’들은 쪽방촌 주민들의 생명줄이 되고 있었다.
“아 덥다 진짜.” 쪽방주민 김기식(81)씨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맛집식당에 들어섰다. 자리를 잡은 김씨는 빨간 모자를 내려놓으며 물냉면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10분 만에 비웠다. 능숙하게 믹스커피까지 타서 마신 뒤 식당을 나섰다. 뒤이어 온 노종수(79)씨도 냉면을 주문했다. 맨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갈색 조끼만 걸친 노씨는 냉면을 다 먹은 뒤 그릇에 냉수까지 부어 마셨다.
이날 식당엔 김씨와 노씨 이외에도 쪽방주민 10여명이 제육볶음 갈치조림 등을 먹고 있었다. 냉면 3그릇을 포장해가는 단체 손님도 있었다. 포장 손님을 포함해 쪽방주민 40여명이 정오까지 이곳을 다녀갔다.
계산할 땐 모두 똑같은 연두색 카드를 내밀었다. ‘동행식당’이라고 쓰인 카드였다. 동행식당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사업 중 하나다. 쪽방촌 주민은 동행식당으로 지정된 민간 식당에서 매일 8000원짜리 식사를 할 수 있다. 현재 서울 지역 5개(영등포·남대문·창신동·서울역·돈의동) 쪽방상담소 인근 식당 43곳이 동행식당으로 지정돼 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동행식당도 있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중구 샬롬식당 사장 홍종은(57)씨는 도시락 포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홍씨는 김치찌개와 오징어볶음 등을 담은 도시락 13개를 승합차에 싣고 서울역 인근 쪽방촌으로 향했다.
5분만에 쪽방촌에 도착했다. 식당과 쪽방촌은 약 9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쪽방주민 20여명은 언덕 밑 일렬로 줄지어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배달을 기다린 쪽방주민들은 동행카드로 음식값을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겐 홍씨가 손수 음식을 날랐다. 건물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시큼하면서 퀴퀴한 냄새도 났다. 복도 양 옆으로는 방이 개미집처럼 뚫려 있었다. 첫 배달지는 1층이었지만 실제로는 반지하에 가까웠다. 반쯤 열려 있던 문을 완전히 열자 푹 꺼진 방에 있던 주민이 보였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방엔 쓰레기봉투가 널브러져 있었다. 누런 벽지는 뜯겨 있었고 벌레가 많은지 살충제도 5개나 보였다. 이곳 주민들은 폭염에도 털이불을 쓰고 있었다. 더위를 피할 방법은 선풍기뿐이었다. 쪽방주민은 이불 위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이분들은 다리가 아파서 어디 나가질 못해요. 주민들에게 이 밥은 생명줄입니다.” 홍씨는 주민들이 아프면 메뉴에도 없는 죽을 끓여다 주기도 한다.
홍씨는 서울 중구 일신감리교회(윤동규 목사) 교인이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내의 권유로 2년 전 교회에 처음 나갔다고 했다. 홍씨는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을 생각하며 쪽방주민에게 음식을 건넨다고 했다.
처음 갔던 맛집식당 사장도 권사였다. 문래동감리교회에 다니는 송복이(63) 권사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는 말씀을 품고 쪽방촌 주민을 맞이한다고 했다.
동행식당에 유쾌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씻지 않은 이들이 오면 다른 손님들이 오길 꺼린다고 한다. 낮술을 하고 온 이들이 식당에 토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지친 송 권사는 지난해 9월 한 달간 장사를 접기도 했다.
“쪽방상담소장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장님은 권사님이잖아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같더라고요….” 김형옥 영등포구쪽방상담소장의 권면에 송 권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섬기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송 권사는 “우리 가게 손님 절반은 쪽방주민”이라며 “이젠 정이 들었다. 이들이 저녁에 또 찾아와 배고프다고 하면 무료로 밥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동행식당과 쪽방주민들은 상생하고 있었다. 6.6㎡(약 2평) 남짓한 방에 갇힌 이들은 동행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난다. 이날 몇몇 쪽방주민은 주머니를 털어 식당에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샬롬식당에서 만난 양삼준(74)씨는 “동행식당이 생기기 전엔 집에서 라면을 먹거나 무료급식소를 전전했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에 고맙고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웃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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