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 산증인’ 권오식 “아프리카 공략하라”
누적 해외수주 1000억 달성 기여 공신
“세계시장 점유율 6% 미만, 다변화해야”
권오식(65) 보국에너텍 부회장을 최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만난 건 그가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과는 무관하게도 해외건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1982년 11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해외영업본부장을 끝으로 2014년 말 퇴임할 때까지 32년 2개월 동안 현대건설에서 종신하며 한국 해외건설의 성장과 번영을 함께한 산증인이다. 그 경험담을 꼼꼼하게 기록한 ‘균형의 힘’을 올해 4월 출간했는데 기자가 그를 알게 된 게 이 책을 통해서였다.
현재 건설업계는 부동산 경기 침체, 공사비 인상 등이 맞물리며 그동안 가장 큰 밥벌이였던 국내 주택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다시 해외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외건설은 1960년대부터 수십년 동안 한국을 먹여살린 공신이지만 2000년대 들어 아파트가 비싼 값에 잘 팔리는 시대가 지속되자 어느덧 찬밥 신세로 밀려나 있었다.
권 부회장은 한국 건설사가 이름값이나 기술력보다도 싼값과 근면함으로 어필하던 시절 해외 각국에서 일감을 따냈다. 1987년 6월부터 1991년 말까지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4년 6개월을 빼고는 해외영업본부에서만 일했다. 첫 부임지인 사우디아라비아부터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카타르까지 그가 이들 4개국 해외 지사에서 일한 기간만 15년이다. 지사장으로 부임한 쿠웨이트에서는 6년을 근무했는데 후반부였던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을 가까이서 겪었다.
“전쟁도 터지고 그랬지만 해외 근무 15년 중 12년을 중동에 있었다 보니 제2의 고향이라고 봐야죠. 사우디에 처음 나갈 때는 인도네시아나 싱가포르처럼 좋은 데도 있는데 제일 어려운 나라라 걱정도 했지만 ‘중동 산업 역군의 일원이 되는구나’ 하는 뿌듯한 감정도 있었어요. 당시 사우디는 기후도 힘들지만 아주 폐쇄적인 나라였거든요.”
그 폐쇄적인 환경에서도 당시 사원이었던 권 부회장은 내무성과 국방성 발주 공사로 6억 달러어치를 따내며 첫 영업 성과를 냈다. 이후 2년간 18억 달러를 수주했다. 지금 환율로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쿠웨이트에서는 15개 공사로 1조4000억원을 벌었고, 카타르에서는 부임 5개월 만에 1조2000억원짜리 공사를 수주했다. 카타르에서 4년간 낸 실적만 7조6000억원이다. 2006년 부임 때만 해도 본사 직원 1명에 현지 채용 직원을 다 포함해 5명도 안 되는 지사였는데 3년 뒤엔 직원이 2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현대건설 전체 해외 공사 수익의 약 30%가 카타르에서 나왔다.
2012년 본사 영업3실장 때는 남미 시장을 개척해 현대건설이 3년 연속 100억 달러 해외수주 실적을 내는 데 기여했다. 현대건설은 1965년 태국 파타닛-나라와트 고속도로 공사를 맡으며 처음으로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했는데 그때부터의 누적 수주금액이 1000억 달러를 달성한 게 2014년이다. 당시 해외영업본부장이었던 권 부회장은 책에서 “공사 수주를 위해서는 회사의 모든 부서가 협조적 유기적으로 서로 지원해 줘야 하기 때문에 회사 전체의 실적이었다”며 “내가 해외영업본부장으로 있을 때에 달성된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후 현대중공업으로 옮겨 플랜트 사업본부 부본부장, 보일러 설비 부문장을 지내고 2018년 8월에는 플랜트 사업본부에서 분사한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난해 11월 모든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40년 넘는 ‘현대맨’ 생활을 마무리했고 올해 4월 열분해 가스화로 상용화 기업인 보국에너텍에 합류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건설 분야 점유율이 6%가 안 됩니다. 제가 있을 때랑 거의 비슷해요. 그리고 한국 건설업체들이 수주한 공사의 70%가 중동 아니면 아시아에 집중돼 있어요. 시장을 좀 더 다변화해야 해요.”
그가 진출을 제안하는 지역은 전쟁 이후 복구 사업이 필요한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다. “부서진 걸 재건하려면 한두 해가지고 될 일이 아니거든요. 10년, 20년, 30년이 걸릴지도 모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안전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재건을 할 테니 우리가 계속 기회를 보면서 조금씩 진출해 교두보를 쌓아야 해요.”
또 하나의 타깃 지역은 아프리카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개발할 능력은 없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잠비크는 가스, 가봉은 석유 자원이 많아요. 이런 나라들은 자원을 담보로 금융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지금 개발하려는 의지가 엄청 강하고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한국을 굉장히 선호하고 있어요.”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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