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가 바꿔준 인생항로, 직장인에서 차 전문가 변신 예비된 길… “선교 활용 기대”
2003년 30대 초반 정승호(52·온누리교회) 대표는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IT 기업에서 경영컨설팅 업무를 하며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비즈니스 약속이 줄을 이었다. 당시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나 마주치던 한 사람이 있었다. 한 번 두 번…몇 번씩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걸어가는 거지?’ 알고 보니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이었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정 대표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로 가고 있는데,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말 그대로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던 정 대표는 어느새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기도는 정 대표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난 11일 서울 성수동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 만난 정 대표는 “어떻게 국내 1호 티소믈리에가 되었나”라는 질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티소믈리에는 커피 바리스타와 같은 개념으로 다양한 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춘 티(Tea) 전문가이다. 처음 새벽기도를 드리던 때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던 그가 ‘슬로우 문화’를 대표하는 티 전문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새벽기도를 시작한 얼마 동안은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기도를 소망하며 퇴근 후 성경책을 펴서 주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고 찬송을 한 장 부르고 성경말씀을 한 장씩 보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회식문화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기도에 하루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하나님, 저 이제 회사에서 어려워질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돌아보니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진로를 물은 적이 없었다.
새벽기도 자리에서 정 대표는 회사원에서 사업가로의 변신을 꿈꾸기 시작했다. 당시 1999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스타벅스가 ‘스타벅스 문화’를 형성해 가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커피 산업은 10년 동안 성장할 것 같다…커피 다음으로 등장할 음료는 무엇일까’라는 고민 끝에 ‘티’라는 답을 내렸다. 10년 후에 티 문화가 시작할 것 같다는 확신에 먼저 뛰어들었다.
당시 정 대표는 티 시장을 조사하며 알게 된 독일의 유명 브랜드 ‘로네펠트 티하우스’(Ronnefeldt Teehaus)에 PPT 15장을 작성해 보낸 것을 시작으로 한국 판권을 따냈다. 사업으로의 길은 순탄하게 열렸지만, 티 문화가 없다시피 한 국내시장에 티를 소개하기가 어려웠다. 매일 새벽기도 자리에서 ‘하나님, 저는 영업에는 소질이 없으니 방법을 알려 주세요’라고 기도했고,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니 서울 시내 5성급 이상의 특급호텔 대부분이 정 대표의 고객이 돼 있었다. 고객들은 고급 티 공급을 원하는 것은 물론 티 음용법도 교육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대표는 직접 티를 교육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유명 티 회사들의 티 메뉴들을 무수히 찾아봤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호텔리어들을 상대로 하는 티 워크숍 과정 참여를 시작으로 인도 스리랑카 등 유명 차 산지를 찾아다녔다. 또 유럽 곳곳을 방문하며 티 전문가 인증을 받았다. 그렇게 자타공인 대한민국 1호 티소믈리에가 탄생했다.
정 대표는 사업 시작 3년 만에 자리를 잡았지만 2006년 큰 시련을 맞았다. 정 대표의 사업을 지지해주고 기도로 동역해준 아내가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2년의 투병 생활 끝에 아내가 하늘로 떠난 직후 고개를 들어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부으려는 찰나에 하늘로부터 위로가 쏟아지는 체험을 했다. 정 대표는 20일 만에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해 부모와 아이들이 있는 캐나다로 떠났다. 앞으로의 미래와 사업, 자녀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 ‘로네펠트 티하우스’ 회장이 찾아와 캐나다 판권을 맡아달라고 했다. 정 대표의 성실함을 믿고 한국에 이어 캐나다 시장도 맡긴 것이다. 또 2008년에는 지역의 작은 카페를 인수해 현지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티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한국에 티 문화가 생기기도 전에 캐나다에서 티 강의 커리큘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점차 국내 대학에서 티 교육을 의뢰하며 강의 요청이 이어졌다. 캐나다와 한국을 오 가며 활동하다가 2011년 귀국 후 서울 압구정에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을 오픈하면서 이듬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티 전문 자격증 검증을 담당하는 ‘사단법인 한국티협회’를 설립해 국내 티 산업 보급에 앞장섰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은 한국 최초 티소믈리에 과정 자격증 발급 기관이며, 티 산업발달을 위해 해외 유명 티 관련 연구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현재 순수 차를 비롯해 꽃잎이나 과일, 허브 등을 더한 수천 가지의 블렌딩티를 원산지별로 구분해 보유하고 있다. 2013년 점차 연구원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정 대표도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다. 2003년 차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10년 후에는 차 문화가 시작될 거라는 전망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2013년 정 대표는 “앞으로 10년 동안 차 문화는 성장할 것이며, 그 후 10년은 차의 시대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된 올해 정 대표는 “지금은 명실공히 차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혔다. MZ세대들도 차 문화에 뛰어들면서 연구원 위치도 압구정에서 성수동으로 옮겼다.
정 대표는 차는 관계를 형성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상대에게 모든 예를 갖출 때 차를 준비하며, 차와 함께 시간이 이야기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차는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차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중국, 대만, 스리랑카, 인도, 일본 등은 한국교회의 선교지이기 때문에 앞으로 차가 선교의 훌륭한 도구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한국의 차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세계 표준의 차 산업을 선도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성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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