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친구에 보낸 카톡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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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기자]
나에게는 30년지기 친구가 있다. 코흘리개 유치원 시절에 만나 각자가 결혼을 하고 옆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본 친구다. 가정사는 물론 몇 살에 누구와 연애했는지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그런 친구는 1n년차 초등학교 교사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특히 친구는 초등 교사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뎠다. 수능을 망쳐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간 친구는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편입을 준비했다. 노력 끝에 수학교육과에 다시 들어갔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또다시 교대로 편입해야만 했다(당시에는 3학년으로 교대에 편입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2년의 교대 생활 끝에 20대 후반 임용 시험을 보고 교사가 된 것이다. 초등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만 거의 10년 가까이 다닌 셈이다. 오죽했으면, 친구의 어머니가 청춘이 아깝다고 공부 좀 그만하라며 말리기까지 했을까.
▲ 우리의 교실은 언제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 |
ⓒ 픽사베이 |
누군가 내게 내 친구 중 가장 착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이렇게 물어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이 친구를 떠올릴 것이다. 야무지고 똑똑하지만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친구는, 별로 안 웃긴 이야기에도 배를 잡고 자지러지는 '리액션 장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책임감이 강한 친구에게 교사는 너무 찰떡같은 직업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런 내 친구 역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가끔 월급이 너무 적다고 울상짓기도 했지만, 나중에 자기 자녀들이 교사가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카톡을 보내면 'ㅎㅎㅎㅎ^^' 웃는 내용이 문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친구, 그런 친구에게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K-장녀다운 성격 탓이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나는 일이 있다. 아마도 초임 교사 때일 것이다. 오랜만에 잘 지내냐고 안부 전화를 걸었더니 경찰서에 가는 길이라 했다. 당시 친구는 4학년 담임이었는데, 학생이 문제를 일으켜 밤 늦게 집을 나섰다고 했다. 고생한다는 내 말에 괜찮다고 별의별 문제가 다 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코로나 때는 하루 종일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개인번호를 왜 알려 주냐고 말렸지만, 친구는 변수가 많은 때라 어쩔 수 없다며 또 웃었다. 한 번은, 수학교육을 전공한 친구가 영어 전담 교사를 맡았다기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네가 영어를 가르친다고? 야, 말도 안 돼."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하. 근데 그래도 담임을 안 해서 너무 좋아."
담임을 해야 수당도 나오고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때는 몰랐다, 학교에서 담임을 맡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에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지가 붙어 있다. |
ⓒ 연합뉴스 |
S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온 나라의 관심이 학교로 쏠렸다. 여기저기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와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금쪽이' 한 명을 필두로 누구 하나 희생양 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교권이 추락한 것은 학생 인권이 과도하게 보장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학생인권조례에 손을 대려는 움직임도 우려스럽다. 교실에서는 교사의 인권도 학생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최근 MBC 뉴스에서 한 기사를 보았다. 몇 년 전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두 초임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초임 교사 2명이 6개월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경기도 교육청은 취재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라고 했다. '학교가 교육청에 보고한 사망원인은 단순 추락 사고'였다고(7일 MBC뉴스 '두 초임교사의 죽음‥이 학교에선 무슨 일이' 참조).
문제 아동의 행동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도 담임 혼자서 모든 문제를 책임져야 했단다. 학교는 뒷짐 지는 것뿐만 아니라, 쉬쉬하며 문제를 은폐하기 바쁘다. 오늘날 학교가 정말 이 정도란 말인가. 교육 시스템의 붕괴 수준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도 여전히 어떤 학부모는 내 아이가 보호받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를 지켜주지 않는데, 교실에서 아이들이 보호될 리 없지 않은가.
기사를 읽고, 교사인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항상 웃기만 하던 친구는 내게 '교사들에겐 이런 게 흔한 일이라서 더 슬프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친구'와 '가족', '딸'과 '아들'을 잃어야 할까. 나는 내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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