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넓어진 청주박물관…이건희 기증품이 바꾼 야외석조정원
모퉁이를 돌면 해사한 목수국 아래 소년 얼굴의 민불(民佛, 민간인 모습 불상) 한쌍이 서 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관복을 갖춰 입고 손을 가슴에 모은 문인석(文人石)들이 도열해 있다. 꽃송이를 든 소녀 석상은 마치 관람객을 반기는 안내원처럼 정원 입구에 자리잡았다.
지난 4일 방문한 국립청주박물관에선 흡사 야외 조각축제라도 열린 듯 진귀한 석조 문화재가 정원 곳곳에서 포착됐다. 최고 높이 3m50㎝에 이르는 문인석과 1m도 안되는 동자승을 포함해 화강암·현무암·대리석 등 재질도 다양한 돌장승(벅수)·석조각이 구석구석 숨바꼭질하듯 늘어섰다. 16세기 석인상 20점을 포함해 조선·근대기의 210여점 모두 ‘이건희 컬렉션’에서 왔다. 2021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수집품 2만3000여 점을 유족이 사회에 환원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총 9797건 2만1693점 가운데 일부다.
중앙박물관은 분류하면서 부피가 큰 석조물은 따로 떼 청동·석기 유물이 많은 청주박물관으로 보냈다. 인계 받은 청주박물관 측이 약 1년 6개월간 조사·연구 끝에 총 459건 836점을 ‘표준유물관리시스템’에 등록 완료했다. 이후 박물관 조경에 어우러지는 석조물을 엄선해 석조정원처럼 꾸몄다. 전효수 학예연구사는 “근대 건축 거장 김수근(1931~1986)의 대표작이라 할 콘크리트 한옥 형태 박물관 및 계단식 건물 배치와 조화를 꾀하면서 볼거리를 늘리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건축면적(약 3200평)외에 정원으로 남겨둔 부지(약 2만평) 전체가 야외박물관이 된 듯 관람 동선이 10배 가까이 넓어졌다. 전 연구사는 “800여점을 다 놓았다간 석조박물관으로 오인될까봐 최소한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데 주력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금관 특별실 입구에 가로 4m, 세로 2.4m 통창 너머 다채로운 석인상 10점을 배치한 곳은 ‘인증샷 명소’가 됐다.
야외 정원 공개는 지난달 25일 이건희 기증품 순회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개막과 맞물렸다. 지난해 기증 1주년을 맞아 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해 고미술과 근현대미술품 총 355점을 선보인 전시는 코로나19 와중에도 서울에서만 22만7914명 관객을 모았다. 이후 고미술품만 같은 타이틀로 광주(170건 271점), 대구(190건 348점)에 이어 청주(201건 399점) 박물관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열리고 있다. 앞서 광주는 도자기와 서화, 대구는 근대회화와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춰 각각 관람객 30만9733명과 26만3823명을 끌었다. 특히 광주박물관은 1978년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 최다 관객이 몰렸다. 이애령 광주박물관장은 “국보 인왕제색도 등 지역에선 보기 어려운 작품을 만나려는 열망이 컸고, 각 박물관이 특색 있게 전시품을 내걸면서 순회 관람 다닌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청주 역시 금속 기증품에 방점을 찍어 청동기 유물이 많은 박물관 색채를 강조했다. 특히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길상(吉祥) 무늬의 고려 시대 금속 꾸미개 33점은 기증 이후 보존처리를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김동완 학예연구사는 “광주·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시장이 협소한 점을 감안해 금속 유물 중심으로 집중과 선택을 꾀했다”면서 “일부 유물은 상설전시관 곳곳에 어우러지게 배치해 특별전과 연계해 감상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팔경의 절경을 담은 윤제홍(1764∼1845 이후)의 ‘구담봉도’와 지역 대표 유학자인 송시열의 제자 권상하(1641∼1721)의 초상화 등 지역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의 전진 배치도 눈에 띈다. 특별전은 10월29일까지 계속된다.
청주=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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