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명 앗아간 '루사' 닮았다…느리게 훑는 '카눈' 오른쪽 친다

최종권, 황희규 2023. 8. 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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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태풍 카눈의 북상과 함께 높은 파도가 이는 강원 강릉시 강문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백사장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카눈 오른쪽 '위험반원' 영향권


2002년 최악의 피해를 줬던 태풍 ‘루사’와 닮은꼴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해 강원도가 긴급 점검에 나섰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6호 태풍 ‘카눈’은 10일 오전 3시쯤 통영 남쪽 120㎞ 부근 해상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9시 남해안을 거쳐 통영 북서쪽 40㎞로 북상한 뒤 오후 3시쯤 충북 청주 남동쪽 40㎞ 육상, 오후 9시 서울 동쪽 30㎞ 부근 방향으로 11일 북한으로 향한다. 한반도 남북을 36시간 동안 종단한다.

북반구에서 발생한 태풍은 북상하면서 왼쪽 바람이 약하고, 오른쪽 바람이 쎈 형태를 띤다. 태풍 오른쪽은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바람에 북진하는 힘이 보태져 ‘위험반원’이라고 부른다.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카눈 오른쪽에 위치한 영남권과 강원 전역은 태풍이 육지로 올라온 동안 위험반원에 속한다.

태풍이 물러가는 11일까지 강원 동해안 지역에 200~400㎜(많은 곳은 600㎜) 이상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카눈은 강도 ‘강’으로 한반도에 진입(10일 오전 9시, 초속 35m), 10일 오후 들어서도 초속 24m~29m 강풍을 동반한다. 충북 북부와 강원 지역에 침수, 강풍 피해가 예상된다.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화면에 태풍 진행 방향이 나오고 있다. 기상청은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10일 강원 동해안에 200~400mm(많은 곳 600mm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뉴스1


루사처럼…느리게 이동하며 폭우 예상


카눈은 2002년 태풍 루사처럼 느린 속도로 한반도를 훑고 지나갈 것으로 보여 대규모 피해 가능성도 있다. 카눈이 서귀포 남동쪽 해상에 진입할 때 속도는 시속 18㎞로 태풍의 평균 북동진 속도인 30~40㎞보다 현저히 느리다. 카눈이 통영을 거쳐 충북 청주, 서울로 이동할 때 속도는 시속 22㎞~26㎞로 예상된다.

태풍 이동 속도가 느리면 한반도에 정체 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커진다. 루사는 2002년 8월 31일 오후 3시 전남 고흥에서 이튿날 낮 12시쯤 강원 동해안을 거쳐 비스듬히 한반도를 관통했다. 당시 시속 20㎞ 안팎 속도로 21시간 동안 해안과 내륙 지역에 피해를 줬다. 사망자는 213명, 실종자는 33명에 달했다. 재산피해액은 역대 최대인 5조1479억 원이었다. 당시 강릉에는 하루 만에 870㎜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강원도는 9일 오전 10시를 기해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2단계를 가동하고 현장 점검 등을 진행하고 있다. 도는 시군과 함께 산사태, 급경사지, 하천 제방 등 재난 취약지역 16만 곳을 최근 점검한 데 이어 인명피해 우려 지역 279곳에 관리 책임자를 지정했다.
9일 전남 목포여객선터미널 인근 항구에 어선들이 태풍 카눈을 피해 정박해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취약지 279곳 관리책임자 지정, 행사 취소


동해안 지역 어선 2580척을 항구로 이동하거나 육지로 인양하는 작업을 마쳤다. 폭우로 피해가 예상되는 동해안에는 3개 점검반을 파견해 소규모 항·포구와 해안가 등 재해 취약 시설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동해안 6개 시·군에서 운영 중인 86개 해수욕장은 관광객이 바닷가에 접근하지 않도록 사전 통제하고,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강원 지역 축제와 행사는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춘천시는 춘천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 부대 행사로 열리는 치맥 축제를 9∼10일 중단했고, 야외 프로그램은 전면 취소했다. 양양군은 8일부터 개최할 예정이었던 2023 해양수산부장관배 서핑대회를 연기했다. 정선군은 12∼13일 예정했던 제7회 강변가요제를 18∼19일로 미뤘다.

지난달 폭우 피해를 본 전남에선 수해 복구와 태풍 대비를 병행하고 있다. 목포시는 지난달 200㎜ 폭우가 내려 석현삼거리 도로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인근 전기·조명 매장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보았다. 9일 찾은 석현삼거리 일대 상인들은 매장 앞에 모래주머니를 층층이 쌓고 있었다. 침수 피해를 막으려고 바닥으로부터 60㎝ 높이 철제 선반을 만드는 주민도 있었다.
지난달 장마철 당시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남 목포시 석현삼거리 인근 전기·조명 도소매 매장 앞에 침수 대비 모래주머니가 쌓여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정리도 못했는데….” 수해 지역 이중고


정승원(33)씨는 “장마 때 침수된 자재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는데, 2주 만에 태풍이 온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유소 대표 박경조(48)씨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사무실 내 곰팡이 슨 벽지 교체 일정을 미뤘다”며 “모래주머니를 사놓긴 했지만, 기름저장고에 또 물이 들어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 인근 목포항에는 태풍을 피해 대피한 수백여 대의 어선이 나란히 고정돼 있었다. 조기잡이 선장 장일섭(62)씨는 “목포항은 주변에 섬이 많아서 태풍이 오더라도 유실 위험이 적은 편”이라면서도 “어선이 많이 대피했지만, 태풍 강도가 세다는 소식에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주원 기자

춘천·목포=최종권·황희규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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