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없다 했더니 상사가 뺨 때려", 그래서 시작된 이주민 연대
[윤성효 기자]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등 단체는 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책 <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
ⓒ 윤성효 |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안함'이 떠나지 않았다. 이주활동가들이 겪어 왔던,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진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때로는 눈물을 훔치거나 박수를 보내 격려하기도 했다.
8일 저녁, 경남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주활동가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그랬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책 <차별에 맞서 삶을 일궈내는 이주활동가들의 이야기-곁을 만드는 사람> 출판 기념으로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열었다.
이은주·박희정·홍세미씨가 베트남 출신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 방글라데시 출신 섹 알 마문 영화감독, 네팔 출신 샤말 타파 평등노조지부장, 미얀마 출신 또뚜야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활동가, 스리랑카 출신인 차민다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사회 부지회장, 필리핀 출신 놀리(가명) 노동운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책이다.
김은정 민주노총 경남본부 수석부본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하루 전날 합천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산재사망한 미얀마 출신 젊은 노동자를 기리는 묵념부터 했다. 김은정 수석부본부장은 "지금은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책 발간에 참여했던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장운동연합 활동가는 "산재추방운동 활동을 하면서 고통 속에 떠난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때마다 그들이 살아 있을 때 만나지 못한 게 가슴에 쌓였다"며 "지원이 아니라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주민 권리찾기에 나선 활동가들을 보면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각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역사와 삶이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일상이 되어 있다시피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 모두의 삶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인간으로 대우 받고 싶었다"
이주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책에서 구술했던 또뚜야 활동가, 김나현 센터장, 차민다 부지회장뿐만 아니라 네옴 경남미얀마교민회 대표, 미오 경남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활동가도 함께했다.
먼저 미오 활동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소통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강조했다.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한국말이 안돼 소통이 어려웠다고 한 그는 "제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언어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업연수생으로 일했던 당시에서 표현을 강력하게 했더라면 바꿀 수 있었던 문제들도 많았을 것이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생기는 문제가 많다. 아파서 병원에 갔고, 맹장염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소통이 안 돼 당장 수술받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차별과 관련해 가슴 아픈 말을 한 그는 "이전에는 사람들한테 생활하기 힘들지 않다거나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차별은 혼자서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면 살아가는 게 편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책을 읽어보고 나서 이런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차별이 있다면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그는 "인간은 사회적 유기체다. 인도네시아에는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며 "이 책을 읽고 그 말을 떠올렸다. 때로는 책을 읽으면서 눈물도 났다. 6명의 활동가에 대한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들의 힘든 시절, 열정이 담겨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했다"고 했다.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등 단체는 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책 <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
ⓒ 윤성효 |
2001년 한국에 와서 11년 동안 미등록자 생활을 했다고 한 또뚜야 활동가는 "그때 경험을 가끔은 잊고 싶을 때도 있고 더 강하게 갖고 있고 싶을 때도 있다. 친한 사람이나 가족한테 그때 이야기를 해주면 운다"라며 "그때 이가 아파서 치과병원에서 신경치료를 받았다. 치과 치료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보니, 당시 단속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을 많이 했다. 아픈 상태로 미얀마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아직도 경찰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불안해지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전했다.
여러 아픈 경험을 들려준 그는 "제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저는 착하다고 생각하는데, 경찰이 무서웠고, 거리에도 편하게 다닐 수 없었다"며 "말다툼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상대가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자)잖아. 경찰에 신고하면 끝이야'라고 할 때, 땅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절대로 사람들과 싸우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회고했다.
또 "직장에 출근하는 길에 '다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월급통장도 만들 수 없다 보니 여행용 가방에 현금을 넣어두고 만 원 씩 꺼내서 썼던 적이 있다. 금 24돈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데 저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이걸 팔아서 비용으로 쓰기 위한 용도이며, 항상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도 찌지 않았다. 그런데 이주민인권단체를 만나 변화가 많이 생겼다. 이전에는 저한테 미래가 없고 기계처럼, 노예처럼 일만 했는데 상담받고 하면서 인간으로 대우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시작된 싸움
199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 김나현 센터장은 "처음에는 부산 연산동에 있는 어망 공장에서 일했다. 적은 월급인데도 다달이 식대 6만 원이 공제됐다. 투쟁해서 3만 원을 내도록 했다"며 "그런데 처음에 3만 원으로 내리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던 게 아니라, 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시작됐다"고 술회했다.
"당시 회사에서 제공하는 밥은 한국인 노동자도 먹기 힘들 정도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고기를 좋아하는데 고기가 없었다. 항상 김치만 있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제공했다. 우리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하루는 식당에 갔지만 아무도 식사를 하지 않고 그냥 왔다. 그날 상사가 와서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한 언니가 우리는 밥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고, 베트남에서는 개도 이런 밥은 안 먹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상사가 언니한테 뺨을 때렸다. 그 언니는 기숙사에 바로 들어가고, 우리는 야간작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상사가 언니 뺨을 때린 것에 항의하기 위해 작업거부가 시작됐다. 당시 베트남 출신 37명이 같이 일하고 있었다. 우리 결정에 다 따르면 힘이 생길 것이지만, 일부는 고국 가족 등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20명 정도가 작업거부에 참여했다. 그랬더니 회사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퇴근했던 한국 직원들이 다시 왔고, 동료들과 이야기했다. 우리는 식사비 공제액을 월 2만 원으로 제시했지만 회사는 4만 원을 내놓았다. 결국에는 3만 원으로 쟁취했다."
그러면서 김나현 센터장은 "작업거부 결정에 다 따라주면 힘이 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냈다"며 "상사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식대가 쟁점이 되다 보니, 처음에 시작이었던 뺨 때린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걸 까먹었다. 그 언니한테 미안한 마음은 지금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에 산업연수생으로 와 팥빙수 만드는 공장에서 팥을 삶는 일을 맡았던 차민다 부지회장은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잘 안됐고, 하루는 아파서 사장한테 말했더니 약국에 데리고 가서 타이레놀과 박카스를 사주었다. 그래도 낫지 않아 출근을 못 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 아저씨들과 일할 때 반말부터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반말인 줄 몰라서 '예'라고 했다"며 "한국말을 배우고 나서부터 그것이 차별이라는 걸 알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까 차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등 단체는 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책 <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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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각오를 더 다지기도 했다. 또뚜야 활동가는 "미등록자로 있으면서 힘들었지만, 지금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상담이나 도와주는 활동을 하면서 제가 다 겪은 일이기도 해서, 잘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 날 미얀마 출신 2명이 퇴직금 문제로 상담을 해주었다. 통역만 해주었는데, 제가 비자가 없다 보니 협상하는 자리에 같이 앉을 수가 없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사업주가 잘못됐다고 직접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은 밤에 모기한테 물렸는데 모기를 죽이지 못하는 상황과 같았다. 잘못 하는 사업주들을 만나면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산에 있는 '이주민과 함께'라는 단체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은 적은 월급을 받지만 이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이제는 잘못하는 사업주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모기를 죽이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할 게 아니라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닫거나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미오 활동가는 "인도네시아어 통역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금은 한국말을 배워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뿌듯하고 행복하다"라고, 김나현 센터장은 "이전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저한테 활동가라는 단어가 무겁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차민다 부지회장은 "한국에 올 때는 노동운동을 할 것이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성서공단에 체불임금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을 만나면서 노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네옴 대표는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들한테 일을 시킬 줄만 알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장은 우리의 부모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터지면 우리 잘못이라 하고, 그러면 안타깝다"라며 "다 함께 잘 살았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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