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사실은 무서웠어요" 박서준의 성장통

배우 박서준 인터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민성役
평범한 얼굴에 매료…7kg 감량
봉준호 감독과 런던서 깜짝 조우

배우 박서준(34·박용규)은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대인사에서 태도를 지적받고, 포토월에서 하트 포즈를 거부해 질타받았다. 한 유튜버와 열애설에도 휩싸였다. 한 달 사이 그의 이름이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가혹할 정도로 쏟아지는 질타를 뒤로 한 채 그는 묵묵히 영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소위 잘 잘나가는 젊은 배우다. 멜로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그는 해외팬들도 상당하다. 이후 브로맨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입성했다. 그를 찾는 연출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꽃길만 걷던 그는 지금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배우 박서준[사진제공=어썸이엔티]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박서준을 만났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개봉을 앞두고 마주한 그는 "배역을 위해 몸무게를 6~7kg 감량했다"고 말했다.

9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 한 동에 생존자들이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4년 연재된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영화로 각색했다. 영화 '잉투기'(2013) '가려진 시간'(2016)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서준은 극 중 가족을 지키고자 애쓰는 민성을 연기한다. 평범한 소시민의 얼굴로 돌아온 그는 "평범한 인물의 심리 변화를 표현하는 연기를 처음 했다. 안 해본 거라서 끌렸고 재밌었다"고 밝혔다.

민성은 평생 목표인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도 받았다. 아내인 명화(박보영 분)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다. 박서준은 "설정을 봤을 때 근육질 몸매는 아니라고 봤다. 극 내내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어서 몸매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 몸이 민성이 돼야 몰입하기 편할 거라고 봤다"고 했다.

배역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묻자 박서준은 "저도 소심한 면이 있어서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꾹 참고, 말을 아끼는 편인데 화가 한 번 터지면 돌아버리는 성격"이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그는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박서준[사진제공=어썸이엔티]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 역에 일찌감치 캐스팅됐다. 이를 들은 박서준은 시나리오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해 읽었다. 베테랑 배우 이병헌과 함께 연기하고 싶어서다. 1번이 아닌 2번 배역을 자처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배우로서 연차가 조금 쌓이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병헌 선배는 연기를 공부하던 학생 때부터 팬이었기에 꼭 작품에서 만나고 싶었죠. 선배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다행히 내 또래 배역이 있고 선배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죠. 이병헌과 세대를 함께하고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감독님의 섬세함도 좋았어요. 영화는 나한테 소중한 선물 같아요."

최근 다양한 배역을 오가고 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의 퇴마사, 행성의 왕자, 축구선수 출신 코치.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재난 한가운데 던져졌다. 촬영도 쉽지 않았다. 로맨스 연기를 하면 다소 편한 연기를 할 수 있을 터. 왜 계속 쉽지 않은 연기에 도전하는지 물었다.

박서준은 "팔자다 싶다"며 웃었다. 그는 "결국 제가 끌리는 건 그런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야기에 매료돼서 출연하기로 하고 현장에 가 보면 한 줄의 간단한 글이 어마어마한 상황으로 펼쳐져 있더라. 항상 그렇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그러면서 "제게 1순위는 배역이다. 늘 다른 배역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물을 먼저 보고 다음에 이야기를 본다. 어떤 식으로든 재밌게,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상황이 그려지는 작품이 좋아요. 제가 난독증이 있어서 빨리 읽히는 게 중요해요. 어떤 시나리오는 몇장도 안 먹어가기도 해요. 그럴 땐 '못하겠다' 생각하죠. 그게 저한테는 엄청난 부분이에요. 제 직감 타율이 낮지 않아서 믿어보려고 해요. 결국 선택은 제 몫이죠. 다만 숫자를 따지지는 않아요. 제작비가 얼마이고 투자를 어디에서 하고, 그것보다 '재미있냐 아니냐'가 중요해요. 결과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잘 되든 안 되든 그래야 후회가 없더라고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앞서 박서준은 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92회 오스카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2019)에 최우식의 친구 역으로 특별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당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서 박서준처럼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며 "촬영하며 목소리가 좋아서 놀랐다"고 애정을 보인 바 있다.

박서준은 "친한 배우 최우식이 '기생충'에 출연해서 정말 부러웠다. 송강호, 이선균 선배와 긴 호흡 함께 해서 더 그랬다. 다양한 선배와 앙상블을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송강호, 최민식 선배와 작품에서 꼭 만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생충' 인연으로 봉 감독과 박서준은 영국 런던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친분을 다졌다. 박서준은 "마블 촬영차 영국에 갔을 때 봉 감독님이 곧 개봉한 영화의 프리프러덕션을 하고 계셨다. 옆 세트장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연락을 드렸다. 감독님이 지내시는 곳 근처에 있는 인도 음식점에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도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봉 감독의 영화에 어떤 배역이든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박서준은 "인연을 맺는 게 어렵다. 그래서 소중하다. 한번 맺은 인연을 지키려는 성격이다. 마음만 가지고 인연을 맺을 수 없다. 시기와 상황이 다 맞았을 때 인연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박서준[사진제공=어썸이엔티]

10여년 전 박서준은 밝고 해맑았다. 인터뷰에서도 잘 웃었고, 우스갯소리도 제법 했다. 다소 장황하지만 자신의 말을 솔직히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최근 마주한 그는 달랐다. 과속방지턱에 걸린 듯 위축되고 경직된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난 6월 열린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보고회에서 박서준은 행사를 앞두고 불거진 열애설에 관해 묻는 말에 "사생활을 공개하는 게 큰 부담"이라며 말을 아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최근 자신이 마주한 상황과 고민에 대해 솔직히 들려줬다. 일각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스토커'나 '스토킹'이라는 단어는 언급한 적이 없다.

"보수적인 성격이 아니었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셨을까요? 집 앞에 늘 같은 차가 따라다녀요.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나오면 그 차가 있어요. 근데 제가 어딜 가는지 알아요. 심지어 저보다 빨리 그 차가 목적지에 도착해 있어요. 또 차는 바뀌는데 사람은 똑같아요. 요즘도 가끔 찾아와요. 두 달 동안 겪어보니 섬뜩하고 무섭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저를 방 안으로 밀어 넣더라고요. 해코지 할까 봐 무섭기도 하고. 부모님, 가족도 그렇고."

박서준은 부모님과 가족을 언급하다 잠시 말을 멈췄다. 감정을 다독이며 침을 삼킨 후 답변을 이어갔다.

"가족들이 저한테 피해 줄까 봐 조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요. 예전에는 가족사진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는데 후회가 되더라고요.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보수적으로 변했어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