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소장에 마약 소지 날짜 개괄적으로 표시돼도 문제 없어"
검찰이 마약 소지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마약을 소지한 구체적인 날짜를 특정하지 못하고 개괄적으로 표시했더라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다면 적법한 공소제기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대마)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미 두 차례 마약 관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2년 8개월을 복역한 뒤 2021년 5월 출소한 A씨는 2021년 11월부터 작년 4월까지 여러 차례 필로폰과 대마를 소지·흡연·투약한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1·2심 법원은 그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약물치료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 2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A씨는 나머지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공소사실 중 '2021년 11월 하순 20:00경' 대구 달서구의 모 아파트에서 필로폰을 소지했다는 혐의 사실 만큼은 부인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2011년 11월 하순경 A씨가 해당 아파트에서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증인 B씨의 진술 ▲증인 B씨의 법정 진술 태도나 본인이 처벌받을 위험성을 감수하고 진술한 점에 비춰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점 ▲A씨가 범행을 부인하면서 처음에는 해당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무렵 그 아파트에 가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선배 집이 있어서 방문한 사실이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 ▲범행 추정 시기 A씨의 발신기지국 위치가 해당 아파트 부근으로 확인된 점 등을 근거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A씨는 검찰이 정확한 날짜조차 특정하지 않고 기소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공소제기의 방식과 공소장에 대해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4조 4항은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하여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범죄일시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검사의 공소제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먼저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여기서 범죄의 일시는 이중기소나 시효에 저촉되지 않는 정도로 기재하면 되며, 이와 같은 요소들에 의해 공소사실의 특정을 요구하는 법의 취지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쉽게 해주기 위한 데에 있으므로, 공소사실은 이러한 요소를 종합해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다른 사실과 식별할 수 있는 정도로 기재하면 족하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 장소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위의 정도에 반하지 않고, 더구나 공소범죄의 성격에 비춰 그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하며, 또한 그에 대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그 공소내용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A씨 문제삼은 공소사실과 관련 "범죄 일시가 '2021년 11월 하순 20:00경'으로 다소 개괄적으로 표시돼 있기는 하다"라면서도 "그러나 이는 범행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보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그 일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제보자의 진술 외에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마약류 소지 범죄의 특성에 비춰 그 범죄 일시를 일정한 시점으로 특정하기 곤란해 부득이하게 개괄적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해당 부분은 범행 장소의 적시를 통해 다른 범죄사실과 구별될 수 있고, 그 일시가 비록 구체적으로 적시되지는 않았더라도 이중기소나 시효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여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라며 "따라서 원심판결에 공소사실 특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A씨는 2심 재판부가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항소이유를 피고인 측이 철회했다고 보고 아예 판단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애초 A씨 측은 항소이유서에 사실오인, 양형부당과 함께 '공소사실 특정에 관한 법리오해' 취지의 주장도 넣었었는데, 항소심 첫 공판기일에 항소이유 요지를 밝히면서 사실오인, 양형부당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자 재판부가 이에 대한 판단을 누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항소이유 철회에 관한 법리오해나 판단누락이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다며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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