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아동학대 가해자로 자진 신고한 엄마

조영준 2023. 8. 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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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79] 다큐멘터리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 내 이웃의 아이>

[조영준 기자]

 
 다큐멘터리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 내 이웃의 아이> 스틸컷
ⓒ EBS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엄마는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니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친인척도 없이 세상엔 정말 둘 밖에 없는 상황. 이렇게만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엄마의 폭력성과 아동학대다. 물건을 던지는 것은 기본, 욕설을 퍼붓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때리는 등 분노를 자제하지 못한다. 자신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섭다는 엄마는 개선을 위해 EBS의 훈육프로그램 <부모>에도 출연한 바 있지만 그때뿐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엄마가 조금만 가까이에서 움직여도 반사적으로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고, 언제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 튈지 모르는 상황이 무섭다고 말한다. 결국 엄마는 2021년 4월 23일, 자신을 아동학대 가해자로 자진신고한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화가 났을 때는 정말 아이가 그냥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 내 이웃의 아이>는 경찰서에 자신의 아동 학대 사실을 자진신고한 한 아이의 엄마를 비추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껏 언론을 통해 만나왔던 참혹한 수준의 학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해자에 해당하는 부모의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멈출 수가 없었다. 가정 내의 체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사소하고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다. 이 작품은 해당 가정의 사례를 찾아 그 후 1년의 시간을 밀착 취재하고 있다. 가해와 후회를 반복하는 엄마의 모습과 기대와 절망을 반복하는 아이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02.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가정폭력의 수준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이나 작가와 통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아직 채 아이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아들이 집 안에서는 항상 숨을 죽이고 있다. 반려견의 뒤처리를 하거나 남겨진 집안일을 하는 것 역시 모두 그의 몫이다. 회사에 출근해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엄마는 그것이 부탁이었다고 말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 아직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부터 시작되는 분노와 폭력뿐이다.

엄마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스스로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자진신고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학대 말고는 아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여겨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자진신고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개입하여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는 피해자 신분으로 경기서부해바라기센터에 출석해 그동안의 일들을 진술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해지는 스트레스와 압박은 두 모자간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아들과 함께 체벌에 활용된 매를 같이 버리는 의미적인 행동과 노력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언어적 폭력은 더욱 심해지고 급기야 함께 죽자는 말을 꺼낸 이후 경찰과 시청의 현장 출동으로 엄마와 아이는 강제로 분리된다. 두 번째 신고, 이번에는 아들의 요청에 의한 개입이다.

명백한 가정폭력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태도는 지금까지 가정폭력이라는 이름 위에 전사되어 왔던 일반적인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 푹력 이후 짙게 드리우는 후회와 슬픔의 자리다. 아이가 보호소로 떠나며 챙겨갔던 옷가지와 소지품을 돌려받은 그녀는 아이의 채취를 맡으며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물론 현실은 강제된 접근금지처분과 '엄마라는가면을쓴악마'라고 저장된 아들의 핸드폰 속 자신의 전화번호다.
 
 다큐멘터리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 내 이웃의 아이> 스틸컷
ⓒ EBS
03.
"엄마 근데 나 왜 때렸었어?"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엄마를, 엄마는 아들을 서로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에 해당하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아들 역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의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엄마의 품을 그리워한다. 함께 살던 때에도 그런 엄마에게 먼저 다가가 애교를 부리던 아들이었고 바라는 것이라고는 같이 대화를 하는 것뿐이라던 아이였다. 물론 강제로 분리된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심리 상담을 포한한 재결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을 지나는 동안 연락을 할 수 없다. 재학대 예방을 위해 아동을 원가정으로 바로 복귀시키지 않고 단계적으로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는 가정복귀 훈련프로그램 때문이다.

상담을 통해 드러나는 엄마가 보이는 폭력의 기저는 대물림에 있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사랑받지 못하고 역시 같은 수준의 가정폭력을 당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여기에 혼자 가정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가되었다. 엄마 역시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이 애가 내 아들이라는 이유, 제일 편안한 존재라는 이유로 그랬던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한다. 분리가 된 상태에서는 이렇게 이성적으로 잘 판단되고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는데 함께 사는 동안에는 이 폭력을 왜 멈출 수 없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두 사람이 즉각 분리된 지 145일 만에 수원가정법원에서는 보호관찰 6개월 처분이 내려진다. 엄마가 자신의 폭력성을 인정하고 자진신고를 했다는 점과 분리된 상태로 아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여러 부분에서 노력한 내용이 반영된 것 같다. 실제로 엄마는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약도 복용하고 있으며, 돌아올 아이와 함께 지낼 집안 역시 모두 정리하고 수리했다. 엄마와의 재회를 며칠 앞두고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된 아이는 엄마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행동이 어떨지 보여요.' 오랜 시간 엄마의 목소리에 따라 눈치를 보며 살아온 탓일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 내 이웃의 아이> 스틸컷
ⓒ EBS
04.
2022년 2월 3일, 엄마가 자신을 아동학대 피의자로 자진신고한 지 정확히 286일 만에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이의 모습이 항상 눈꼬리가 처져 있던 기가 죽어있는 아이였는데 엄청 밝아졌다고 말한다. 밝아진 것은 아들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모습도 어딘가 모르게 편해 보이고 환해진 듯하다. 매달 2회 이상 방문해 가정환경을 확인하게 되어 있는 보호관찰관과의 상담에서도 엄마가 가끔 화를 내긴 하지만 이제 참으려는 모습이 느껴진다며 아이는 웃는다.

우리나라 역시 이제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때릴 수 없도록 법이 보호하고 있다. 지난 2020년 6월 발의된 민법 915조 삭제 법안이 이듬해인 2021년 1월 8일 공식적으로 가결되었기 때문이다. 징계권에 해당하는 민법 915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징계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가정폭력은 여전히 만연하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2만 906건, 하루 평균 85명의 아이들이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한다(2020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보건복지부). 그리고 피해아동의 83.9%는 학대 가정에 그대로 보호되고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반복해서 굳게 닫힌 현관문을 비춘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문의 형태나 모양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공간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일 것이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 그리고 내일. 영상 내내 가해지던 엄마의 폭력을 변론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홀로 바로 설 수 없던 시간의 자신을 스스로 신고했던, 회복에의 엄마의 간절한 마음 정도는 이제 믿어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렇게 작은 희망은 그 끝자락에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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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2022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바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 EBS 다큐멘터리 전용 플랫폼인 D-Box를 통해 유료로 관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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