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방랑하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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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들은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때부터 수많은 세월 동안 몸짓만으로 모든 표현을 할 수 없어 그것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그 작품은 참신한 폭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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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철학자 헤르만 폰 카이저링이 1911년부터 1912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인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당시 가졌던 철학적 사색을 담아낸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는 당시 유행했던 그랜드 투어 여행기와 달랐다. 유럽인의 편협한 시선 으로 바라본 이국적 풍경 기록이 아니었다. 동양 종교와 철학에 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국적 공간을 '구경 대상'이 아닌 '철학 사유 대상'으로 삼았다. 인도를 방문해 힌두교가 어떻게 인도 땅에 자리 잡고 수천 년간 이어왔는지, 중국을 방문해 유교가 어떤 식으로 동아시아 사회를 통합하고 움직여왔는지 등을 고찰한다.
아프리카의 자연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처럼 커다란 감흥을 준다. 자연만큼 훌륭하게 작업할 수 있는 조각가가 어디 있을까. 자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인간 형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어렵다. 대부분 한참 멀다. 순수하게 예술적인 면에서나 작품이 암시하는 힘에서나 그 모델에도 크게 못 미친다. 유럽의 탐미주의자들은 최고의 예술만 중시한다. 나도 그렇다고 해야 할까? 예술가들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우연히 작품을 내놓을 기회와 명성을 누릴 뿐이다. 조각가들은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때부터 수많은 세월 동안 몸짓만으로 모든 표현을 할 수 없어 그것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그 작품은 참신한 폭로가 된다.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 별로 없다. 시인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려면 낯선 감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 31쪽 1부 열대 지방 ─ 아덴
해박하고 추론에 뛰어난 학자들은 불교 철학을 흐뭇해한다. 이해할만하다. 마흐는 형이상학이 필요한지 몰랐고 종교적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학적 상대주의에 만족했다. 이와 반대로 개념들을 붓다와 비슷하게 이해하고 보편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의 철학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절대 존재를 염두에 둔다. 본질 개념에서 붓다와 우연히 비슷한 눈으로 현상을 보는 힌두교 현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구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을 중시하는 일종의 종파를 창립한 오귀스트 콩트, 인격에 담긴 신성으로서 ‘사람으로 살아 있는 신’을 생각했던 윌리엄 제임스, 만년에 ‘불가지론’으로 기운 허버트 스펜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붓다는 현상학이라고 할 만한 종교를 일으켰다. 붓다는 복음서의 형식으로 인식을 분석했다. 마흐가 했을 법한 일이다. 붓다는 그런 것을 했다. 서구인이 보기에 매우 역설적인 일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브라만 철학자들은 불교를 무시했다. 처음에는 나도 이상하게 보았지만 이제는 비로소 이해한다.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과 관련된 생리 조건에서 불교는 사실 복음서의 의미를 띨 만하다. - 54쪽 2부 실론 ─ 칸디
방랑하는 철학자 | 헤르만 폰 카이저링 지음 |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800쪽 | 3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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