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언제 했는지 정확히 안 적힌 공소장, 무효"…주장했지만 징역형 확정
마약을 언제 소지했는지 공소장에 정확히 적혀 있지 않더라도 법원이 판결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필로폰 소지 시점을 “11월 하순”으로 기재한 공소장 내용이 모호하다며 무효를 주장한 피고인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난달 27일 판결했다.
마약류 소지 범죄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사가 이뤄졌을 경우 소지 일시를 특정하기 어려운 데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1월에는 필로폰 소지 안했다…‘하순’으로 개괄 표기는 문제”
2021년 11월과 이듬해 4월 필로폰과 대마를 소지·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A씨는 “2021년 11월에 필로폰을 소지한 적은 없다”며 범행 일부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필로폰 소지의 시기가 공소장에 “11월 하순 20시경”으로 개괄적으로 적혀 있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불특정된 공소사실’이라며 무효를 주장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54조는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범행 사실이 특정돼야 피고인이 알리바이를 제시하는 등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고 법원의 심판 범위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심은 A씨의 범행을 증언한 제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당시 A씨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가 대구 한 아파트 인근으로 공소장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제보자에 날짜 특정 기대하기 어려워”
대법원도 “11월 하순” 수준으로 범행 시기를 기재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의 특정을 요구하는 법의 취지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쉽게 해주기 위한 데 있다”며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다른 사실과 식별할 수 있는 정도로 기재하면 족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범죄 일시가 다소 개괄적으로 표시되어 있기는 하다”면서도 “이는 범행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보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그 일시를 명확하기 기억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마약류 소지 범죄는 제보자 진술 외 객관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 만큼 시점을 개괄적으로 표시하기 곤란했을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이 범죄 사실이 어느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소송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놓은 건 약 7개월 만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29일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체크카드를 넘긴 혐의로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기존 판결을 깨고 2심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이때 대법원은 공소장에 적시된 범행 시기인 “11월 4일경부터 15일경까지”가 지나치게 넓고, 범행 장소·방법 등도 “불상의 장소”, “불상의 방법”과 같이 뭉뚱그려져 있다고 봤다. 당시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이런 식의 공소사실 기재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특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님은 손 뗐다" 감싸줬더니…"저놈이 부두목" 배신당했다 | 중앙일보
- 세계 최대 커피숍 스타벅스 굴욕…'이 나라'선 10년째 안 통했다 | 중앙일보
- 절교 당하자 동급생 집 찾아가 살해…여고생의 무서운 집착 | 중앙일보
- 암 수술 얼마 뒤 "퇴원하세요"…가족 없는 환자인데, 병원은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 중앙일
- 엑소 백현 "MC몽 조언 받았다"…130억원 대출 받은 이유 | 중앙일보
- 소문대로 별거였더라면…산드라 블록 '8년 연인' 루게릭병 사망 | 중앙일보
- 내 다리 찌른 70대, 발로 넘어뜨렸는데...되레 '피의자'될 판 | 중앙일보
- 현금 4800만원 돈가방, SRT 놓고 내린지 30분만에 생긴 일 | 중앙일보
- "양동이로 퍼붓듯 비 쏟아질 것…태풍 카눈, 전국이 영향권" | 중앙일보
- "당장 급하다, 잼버리 뭘 시키지" 3만명 넘게 몰린 지자체 난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