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K8 AWD, 아스팔트 움켜쥔 '네발짐승'의 매력
‘바아아아아앙~.’
고배기량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엔진음이 귀를 간질이며 차체가 빠르게 쏘아져나간다. 터보엔진의 카랑카랑한 음색이나 전기차의 인위적인 사운드와 차별화되는 이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랜만이다. 내연기관 다운사이징과 전동화 추세에 밀려 희귀해진 터라 ‘레트로’한 느낌까지 든다.
기아의 준대형 세단 K8을 2년여 만에 다시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4월, K7에서 숫자를 하나 높이고 출시됐을 당시의 미디어 시승행사가 첫 만남이었다. 그때는 4륜구동(AWD) 모델이 준비되지 않았고 시승 거리도 짧아 아쉬웠지만 드디어 아쉬움을 풀게 됐다.
시승 모델은 3.5 가솔린 AWD 최상위 트림인 플래티넘이었다. 무더위와 폭우가 반복되던 최근 3박 4일간 고속도로와 시내, 산속 와인딩 코스를 포함해 약 500km를 달렸다.
예나 지금이나 K8의 유일한 경쟁자이자 형제차인 현대자동차 그랜저는 준대형 세단의 왕좌를 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K8은 꾸준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일자눈썹’ 패밀리에 합류한 7세대 그랜저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난해한 소비자에게 K8은 훌륭한 도피처(?)가 될 수 있다.
‘미래’를 강요하는 현대차와 달리 기아는 ‘현실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내놓는 경향이 강하고, K8도 그런 경향을 충실히 따랐다.
기아가 ‘타이거 페이스’로 이름 붙인 K8의 전면 디자인은 명칭과 달리 호랑이 보다는 상어의 느낌을 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삐죽삐죽한 여러 개의 이빨을 드러낸 채 먹이를 노리고 당장이라도 쏘아져 나갈 듯한 모습이다.
뒷좌석부터 트렁크 리드까지 완만하게 낮아지는 패스트백 스타일의 측면 실루엣도 이 차가 달리기에 좋은 체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5m를 넘는(5015mm) 전장은 날렵한 디자인으로 인해 더욱 길어 보인다. K8보다 20mm나 긴 그랜저(5035mm)가 뭔가 뭉툭해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시승 모델에 탑재된 V6 3470cc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300마력과 최대토크 36.6kg‧m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만 1.7t에 달하는 묵직한 차체임에도 정지 상태에서 순발력을 발휘하거나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다이내믹하게 토크를 끌어올리는 터보엔진을 선호하는 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넉넉한 배기량을 바탕으로 여유 있게 힘을 전달하는 자연흡기 엔진의 주행 질감도 특유의 매력이 있다.
특히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엔진음은 빠져나가야 할 램프를 지나쳐 고속도로를 더 달리고 싶을 만큼 감미롭다.
네 바퀴 굴림 방식은 달리는 재미를 한층 높여준다. 통상 사륜구동 차량이 후륜구동 기반으로 샤프트를 통해 앞바퀴까지 구동력을 배분하는 방식인 반면, K8은 전륜구동 기반의 AWD 시스템을 적용했다. 2021년 출시 당시만 해도 국산 준대형 세단 최초였다.
SUV에서 부각되는 사륜구동의 장점이 험지 주파능력이라면 세단에서는 코너링 안정성이다. 실제 K8의 AWD는 고속도로에서의 급회전 구간은 물론, 산속 와인딩 코스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정도 덩치의 차를 몰고, 이정도 속도에서, 이정도 핸들을 돌렸으니, 이정도 출렁임은 있겠지’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AWD 시스템은 꽁무니가 출렁일 상황이겠다 싶으면 즉각 개입해 뒷바퀴에 구동력을 배분한다. 마치 바닥을 움켜쥐고 달리는 듯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시승 기간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릴 일도 있었는데, 이 때 역시 AWD 시스템이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주행 상황에서 구동력이 앞뒤 바퀴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디스플레이로 확인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속도가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고속으로 급회전 구간을 진입하면 시트가 버킷시트처럼 옆구리를 강하게 받쳐준다. 통상 그런 상황이면 긴장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몸이 단단하게 고정되니 안정적인 느낌이다.
다만, 이 기능이 지나치게 민감할 때가 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 옆구리에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을 몇 번 받으면 짜증이 일기도 한다. “그만 해라 좀.”
준대형 세단의 기본적인 용도는 패밀리카다. 운전자는 물론 뒷좌석 탑승객의 안락함이 중시된다. 과거에는 ‘사장님 차’ 용도로도 많이 쓰였다.
하지만 K8 AWD 모델은 좀 더 운전자 지향적으로 세팅이 된 듯 하다. 스팅어가 단종되며 명맥이 끊긴 기아 스포츠세단의 역할을 넘겨받기에 충분한 스타일과 퍼포먼스를 지녔다.
지금은 그랜저도 전륜구동 기반 AWD 모델이 있긴 하지만, K8 AWD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플랫폼과 엔진 등 상당 부분의 부품을 공유하는 동일 차급이라도 통상 기아는 현대차보다 서스펜션 세팅 등이 단단하다.
연비는 시승기간 전체로 9.6km/ℓ가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하면 15km/ℓ 수준을 넘나들지만, 덩치가 큰 고배기량 가솔린 차량의 특성상 시내 정체 구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면 연비에 치명적이다.
K8 3.5 가솔린 AWD 모델 가격은 시승 모델인 플래티넘이 4599만원이다. 기본 트림인 노블레스는 4159만원, 시그니처는 4491만원으로 모두 4000만원 초중반으로 형성돼 있다. 참고로 그랜저 3.5 가솔린 AWD 최상위 트림(캘리그래피, 5103만원)과 비교하면 K8 동급 트림이 500만원 가량 저렴하다.
▲타깃 :
- 스팅어 이제 안 판다고? 뭘 사지?
- 그랜저는 아무리 봐도 스타리아 눌러놓은 거 같은 생각이 든다면.
▲주의할 점 :
- 네발로 달리는 만큼 배도 빨리 고픔.
- 내년엔 뒤태가 한결 잘 빠진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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