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박종화와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손잡았다

장지영 2023. 8. 9. 0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띵 결성, 23~25일 서울·대전·광주에서 공연
국경과 장르를 넘어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협업
피아니스트 박종화(왼쪽)와 가야금 명인 허윤정이 최근 서울대 음대에서 국민일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프로젝트 띵을 결성한 두 사람은 서울대 음대 교수 동료 사이기도 하다. 권현구 기자

지난해 9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악가악무-절정’은 전통음악·즉흥음악·현대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전통예술의 거장 및 신예들과 함께한 공연이었다. 그 시작은 이날 참여 아티스트 가운데 유일하게 서양 클래식 악기 연주자와 함께하는 무대였다. 바로 허윤정과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연주한 도널드 워맥 하와이대 교수의 이중주곡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이’ 초연으로,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만남을 들려줬다.

‘악가악무-절정’은 창작과 계승의 균형감을 잘 보여줬다는 호평 속에 올 초 신설된 ‘서울예술상’ 1회 수상자가 됐다. 그리고 이 공연의 또 다른 성과는 박종화와 허윤정이 준비중이던 프로젝트 그룹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됐다. 피아노와 거문고가 만나 ‘모든 것(The Everything), 불가능한 것은 없다(The Impossible is Nothing) 그리고 새로운 어떤 것(Something)’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띵(tHinG)’이다. 또한 띵(tHinG)은 ‘가온의 하모니(the Harmony in Gaon)’의 줄임말로, 가온은 중심을 뜻한다. 즉, 현재 화제의 중심 또는 트렌드를 리드하는 음악을 의미한다.

프로젝트 띵이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24일 대전예술의전당 국제음악축제, 25일 광주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작곡가들에게 위촉하거나 편곡을 의뢰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두 연주자를 재직 중인 서울대 음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동서양 경계를 무너뜨리는 음악 추구

“음대 교수 동료로서 평소 친밀하게 지내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데요. 몇 년 전에 박 선생님께서 제게 적극적으로 협업을 제안하셨어요. 동서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음악을 해보자고요.”(허윤정)
허윤정이 이끄는 그룹 블랙스트링은 국악과 재즈의 조화를 보여주는 음악으로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다. 블랙스트링은 황민왕(아쟁·장구), 이아람(대금·양금), 허윤정(거문고), 오정수(기타)로 구성돼 있다. (c)나승열

허윤정은 그룹 슬기둥·상상·토리앙상블 등을 거쳐 2011년부터 그룹 블랙스트링을 이끌고 있다. 허윤정을 중심으로 오정수(기타), 이아람(대금·양금), 황민왕(아쟁·장구)으로 구성된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국악과 재즈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18년엔 세계적 권위의 월드뮤직 매거진 ‘Songlines’ 주최 뮤직어워드에서 한국 그룹 최초로 아시아 부문 최고상을 거머쥔 바 있다. 그리고 박종화는 리사이틀과 오케스트라 협연 등을 통해 비르투오소(뛰어난 기량을 가진 연주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설치예술과 연극 그리고 인공지능 활용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 바 있다. 지난 2015년엔 한국 동요와 민요를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해서 녹음한 음반 ‘누나야’를 발매하기도 했다.

“오랫동안(약 30년) 외국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피아니스트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적인 것을 찾다가 제가 기억하던 동요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동요 프로젝트에서 용기를 얻어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연주자, 작곡가와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통음악과 협업하고 싶었어요.”(박종화)

지난해 첫 공식무대 이후 팀 수면 위로

박종화의 제안 이후 두 사람은 2018년 사적인 모임에서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형제들)’을 거문고와 피아노의 이중주로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요즘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프라트레스’는 원래 다양한 악기 조합으로 편곡된 버전이 존재하지만 두 사람이 거문고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직접 편곡까지 했다.
지난해 9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악가악무-절정’에서 거문고 명인 허윤정(오른쪽)이 피아니스트 박종화와 함께 도널드 워맥 하와이대 교수의 이중주곡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이’를 초연하고 있다. 허윤정

“‘프라트레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 등 현악기를 위한 이중주곡으로 많이 연주되는데요. 현악기 자리에 그대로 거문고를 넣는 것이 아니라 원곡의 철학과 메시지를 헤치지 않으면서도 거문고의 매력을 살릴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상징하는 거문고와 피아노 모두 개성이 뚜렷한 악기지만 저희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 편곡한 것이 협업을 의미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곡을 선택한 이유도 동서양의 문화가 인류사의 관점에서 형제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박)
“거문고는 음의 운용과 연주법을 놓고 볼 때 국악기 중 극단에 위치합니다. 그만큼 서양 음악을 연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피아노는 클래식 악기 가운데 가장 극단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거문고와의 조합이 드뭅니다. 허 선생님과 ‘프라트레스’를 작업하면서 두 악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주자와 작곡가가 함께하면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허)

‘프라트레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던 두 사람은 지난해 허윤정의 ‘악가악무-절정’에서 첫 공식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워맥에게 위촉한 신곡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이’는 예상보다 큰 호평을 받았다. 허윤정은 “워맥 선생님이 한국음악의 전통어법과 한국악기의 특성을 잘 아는 만큼 좋은 곡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기대 이상으로 대중의 반응도 좋았던 데다 우리도 연주하면서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프로젝트 띵을 구체화 했다”고 설명했다.

수평적 구조 지향하는 음악 플랫폼으로

프로젝트 띵의 목표는 한국에 둥지를 틀지만 국경과 장르를 넘어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함께 세계와 호흡하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허윤정과 박종화 모두 연주자면서도 창작자로서 자신의 방향성을 추구해온 것과 연결된다. 두 사람이 팀 결성 이후 처음 선보이는 이번 8월 무대는 ‘가온의 하모니’라는 타이틀 아래 마크 안드레, 사라 넴초프,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 등 세계 각국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신곡들과 허윤정과 박종화가 편곡한 곡 등이 연주된다. 특히 20세기 대표 작곡가 중 한 명인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손자로 작곡가 겸 전자음악 연주자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는 이번 한국 무대에 직접 오를 예정이다.
작곡가 겸 전자음악 연주자 가브리엘 프로코피예프는 프로젝트 띵에게 위촉받은 곡을 작곡했으며 이번 한국 무대에 직접 오를 예정이다. (c)HLJones

“저희의 작품 의뢰를 받은 안드레, 넴초프 등 해외 저명한 작곡가들이 바로 OK를 해서 놀랐어요. 예전엔 국악기에 대한 정보나 자료가 없었지만 지금은 해외 작곡가들이 영어 자료와 유튜브 등을 통해 국악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곡에 대한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우리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청중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허)
“프로젝트 띵은 요요마&실크로드 앙상블이나 크로노스 콰르텟의 맥락을 잇는다고 생각해요. 시대와 함께 숨쉬는 단체, 그리고 작곡가들이 함께하고 싶은 단체를 지향하거든요. 특히 저희는 참여 아티스트들 사이의 수평적 구조를 지향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저희 연주자들도 최대한으로 작곡가와 소통하거나 작곡 또는 편곡 작업에 참여하려고 합니다.”(박)

프로젝트 띵은 올해 한국 공연을 마친 후 독일 등 해외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음 공연을 위해 또다른 작곡가들에게 이미 신곡을 위촉한 상태다. 허윤정은 “프로젝트 띵의 작업은 한계가 없다. 모든 것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형태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고, 박종화는 “그동안 한국이 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수입했다면 21세기에는 한국 주도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가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띵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