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다치는 게 낫다”…총기 적극 사용하래도 망설이는 이유

김정연 2023. 8.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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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 일대에서 경찰특공대가 순찰을 하고 있다. 경찰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후 온라인 공간에 ‘오리역 살인예고’ 글이 올라오자 분당 지역에 경찰관 98명을 긴급배치 했다. 뉴스1


“폭력사범 검거 과정에 정당행위·정당방위 등을 적극 적용하라.” (7일 한동훈 법무부장관)
“흉기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테이저건 등 경찰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하겠다.”(4일 윤희근 경찰청장)

묻지마 강력범죄가 계속되자 법무부장관과 경찰청장이 잇따라 ‘필요하면 총을 써도 된다’고 말했지만 일선 경찰관들에게선 “그건 윗분들 생각이고 현장은 다르다”(2년 차 순경 A)는 냉소가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 “나는 적법하게 총을 쐈다고 해도 상대방이 문제제기를 하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순경 A)는 인식이 두껍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경찰 27년차인 중간간부는 “경찰 내부에서는 ‘범인을 놓치는 건 징계를 안 받지만 총 쏘면 징계받는데, 아예 안 쏘는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며 “선배들은 ‘야, 총은 절대로 쏘는 거 아니다’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형사는 불기소라도 민사는 “너 배상”


흉기난동자 앞에서도 총기 사용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법원의 판단 경향이다. 한 장관이나 윤 청장이 강조하기 전에도 이미 공무집행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해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케 경찰관들에게는 형사책임을 쉽게 묻진 않았다. 공무상과실치사,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 등으로 경찰관을 고소해도, 검찰 단계에서 무혐의 또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7년 경남 함양에서 낫을 휘두르는 조현병 환자에게 적법하게 테이저건을 쐈지만 이후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의 유족이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재정신청과 재항고로 다퉜지만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문제는 무기 사용 과정에서 범인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형사 절차에선 불기소 또는 무죄이더라도 경찰관에게 수천만~수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게 법원의 대세적인 재판 경향이라는 점이다. 숱하게 많은 유사 판결에서 법원은 형사적인 차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더라도 민사재판에서 불법행위가 인정되느냐는 별개 문제라는 이중 잣대를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이웃나라 일본과도 차이가 난다. 2021년
「경찰관의 무기사용에 따른 한일간의 판례비교 논문」

(최혜송·이경재)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형사 재판에서 유·무죄 인정 여부는 민사 재판에서 손해배상 책임 인정 여부와 대부분 일치한다. 우리나라가 유독 경찰관의 총기발포에 더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이저건은 전극침 2개가 뻗어나와 약한 전류를 흘려, 용의자를 무력화시키는 무기다. 사진은 테이저건 훈련을 하는 경찰관.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① 칼 들고 70분 대치, 테이저건 맞고 자기 칼에 찔려 사망
2010년 인천에선 만취 상태로 칼 3개를 들고 경찰과 70분간 대치하다 자해를 시도하는 남성이 경찰이 발사한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지면서 자신이 든 칼에 배를 찔려 사망했다. 검찰은 테이저건을 쏜 행위가 정당한 직무집행이었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했지만 민사재판 1심은 달랐다. 이듬해 7월 1심 재판부는 “손에 든 칼에 의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직무상 불법행위를 인정해 총 282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이 “당시 테이저건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합리적 판단에 의해 필요한도 내에서 사용한 것”이라며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해 훗날 그대로 확정됐지만 2심 선고까지 10개월 간 해당 경찰관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②매뉴얼대로 허벅지 쐈는데, 지병으로 과다출혈 사망
2007년 울산에선 칼을 들고 주변을 위협하던 남성이 왼쪽 허벅지에 경찰관이 발사한 권총 두 발을 맞았는데 지병인 간경화로 피가 멎지 않아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경찰관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국가 배상소송 1심은 총 727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뒤집었는데, 대법원은 다시 “배상 책임이 일부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결국 “총을 쏜 건 적법했지만 이후 부상을 처치하는 과정에 과실이 있었다”는 이유로 4922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③하체 쐈는데 갑자기 뛰어내려 머리에 총 맞고 사망
1999년 서울 강남구에서 가스총을 소지한 강도범이 담장 위를 달려 도주하던 중, 경찰이 하체를 조준해 총을 쐈는데 담장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법원은 “총 3288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경찰관의 책임을 20%로 제한해 나온 결과였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다 물어주는 건 아니지만…“내가 다치는게 차라리”


물론 먼저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정부가 나서 이 돈을 경찰관 개인에게 청구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다.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경우 문제가 된 행위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면 국가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다. 국가배상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부가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구상권 청구 여부 및 배상 책임비율 등을 결정한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진짜 고의나 엄청 큰 중과실이 아니면 구상권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송사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 자체가 경찰관에겐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26년차 한 경찰 간부는 “아무리 형사 책임을 면하고 조직이 이해를 해줘도,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 가족이 있는데 소송이 끝날 때까지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며 “총을 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판단이고, 이후 긴 시간 고통받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총을 굳이 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경찰서의 한 과장은 “흉기를 든 피의자와 마주한 긴박한 상황에서 매뉴얼을 머릿속으로 정확하게 생각하기는 정말 어렵다”며 “이러다보니 다수의 동료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못해서 경찰을 그만두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좀 다치더라도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범인을 잡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정연‧이찬규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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