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피하라" 무량판 공포에…전문가들 "그 공법 죄 없다"
“무너질 수도 있는데 무량판 아파트에 누가 살고 싶겠어요.”(30대 직장인 문모씨)
“이러다 무량판 공법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듭니다.”(A 건설사 부장)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를 꺼리는 이른바 ‘무량판 포비아(공포심)’ 현상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에 이어 정부가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민간 아파트(293곳) 전수조사에 들어간 여파다.
‘무량판 아파트’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소셜미디어 등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XX 아파트, 무량판 구조인가요?”, “무량판은 위험하고 시세도 떨어질 수 있으니 무조건 피하라” 같은 글이 넘쳐난다. 주민이 직접 촬영한 주차장 기둥 사진이나 가구 평면도, 도면을 공유하면서 확인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A아파트 주민 사이에선 무량판 적용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급기야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공고문을 통해 “주거동은 벽식 구조, 지하주차장은 라멘(기둥식)구조로 시공됐다. 무량판 구조가 아니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아파트 시공사에 확인해보니, 주거동은 무량판과 벽식이 섞인 혼합 구조였다. 시공사는 “관리사무소가 용어를 잘못 사용해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전했다.
입주민 불안을 의식한 건설사도 분주하다. 국토교통부 조사 대상에 포함된 단지의 설계 도면을 재확인하는 등 자체 점검에 나섰다. B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강남구 개포동 아파트를 자체 점검했다”며 “기둥 주변 슬래브(콘크리트 천장) 부분 등을 확인했고 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이다. 과거엔 벽면 자체로 천장을 지탱하는 ‘벽식 구조’ 아파트가 일반적이었다. 무량판 구조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위주로 쓰였다. 그러다 2010년 이후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층간소음에 강한 ‘무량판 아파트’가 퍼지기 시작했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힘을 실었다. 2016년 전후 주택 수명 100년을 목표로 하는 ‘장수명 주택’ 건설을 위해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에 재건축·재개발 시 용적률을 상향하는 인센티브를 주면서다. 무량판 구조는 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나 시공비, 공사 기간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하중이 기둥 부위에 집중되는 단점이 있다.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였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 자체엔 죄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주차장이든, 주거동이든 공법상 안전성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주거동을 무량판 구조로 지을 땐 가구와 가구는 벽체로 마감하고, 가구 내부만 무량판으로 짓는 혼합 구조가 많다. 전체를 무량판 구조로 짓는 지하 주차장과는 다르다. 주거동은 가구 내부 기둥은 물론 가구 간 벽체가 천장 하중을 받치는 기둥 역할을 한다. 또 엘리베이터와 계단실이 있는 ‘코어’ 부분은 콘크리트 두께만 60㎜에 달해 건물 전체의 하중을 분산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무량판 공법은 오래전부터 썼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공법”이라며 “전단보강근부터 콘크리트 강도까지 설계대로 제대로 시공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2013년 헬기 추락 사고로 외벽이 일부 무너졌는데도, 건물 구조에 손상이 없었던 강남구 ‘아이파크삼성’(2004년 입주)도 무량판 구조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무량판 구조를 싸잡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며 “다만 철저한 설계·시공·감리가 필요한데 건설업계 전반의 문제 때문에 공법상 요구되는 부분이 충실히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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