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제, 교권 보호
교육 현장 만연한 교권 침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라
교권이 이렇게 흔들리면
정상적 학교 교육 어렵고
결국 학생에게 피해 돌아가
교육 당국과 국회는
교사들 절박한 호소에 응답해
실효성 있는 교권 보호 방안
반드시 만들어내야
토요일인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4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교육 정상화와 교권 보호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임용 2년차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22일 첫 집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3주째 이어진 주말 도심 대규모 집회다.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땡볕 더위에도 전국에서 많은 교사들이 참석한 것은 교육 현장의 교권 침해 상황이 심각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데 공감했기 때문일 게다.
서이초 교사의 비극적 죽음은 추락한 교권의 현주소를 일거에 환기시켰다. 숨진 교사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교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교권 보호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교 교사가 100명이나 된다. 이 중에는 교사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경우도 상당수 일 것이다. 실제로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는 교사들이 많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25일부터 9일간 온라인으로 접수한 교권 침해 사례만도 1만1628건이나 됐다.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악성 민원을 제기한 경우, 학부모나 학생의 폭언·욕설, 업무·수업 방해, 폭행, 성희롱·성추행 등 유형은 다양했다.
교권이 침해되고 교사가 흔들리면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터 교권을 보호할 방안을 찾지 못하면 공교육의 미래는 갈수록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교권 보호가 체벌과 강압에 기댄 과거 권위주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상충되거나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은 약화되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교권 보호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꾀하기 위한 조치다. 교권 침해의 피해자는 교사만이 아니다. 선량한 다수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로 귀결될 수 있다. 교사의 정당한 지시에 반발하고, 수업을 방해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까지 용납될 수는 없다.
교사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건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면책이다.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폭력적 행동을 제지하는 행위마저 정서적 학대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수사 대상이 되고 수업에서 배제되거나 직위해제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학생 지도가 정당한 활동이었는지를 판단할 조사도 하지 않고 신고만으로 교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교사들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가장 많이 꼽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교사 면담 사전예약시스템 도입과 민원 창구 일원화, 학부모와 교사 간 상담 장소를 민원인 대기실로 제한 등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발표한 방안들은 그 일환인데 시행해 볼 만하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폭력·폭언을 행할 때 제지할 권한과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교권 침해나 악성 민원, 소송에 직면할 경우 교사 혼자 감당하지 않고 교장 등 학교 관리자나 교육청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특수교사들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마땅하다. 여유가 있는 교육재정교부금을 활용한다면 관련 인력을 확충하고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간제 교사나 유치원 교사들도 교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남겨둬서는 안 된다. 교육 활동 침해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자는 요구가 있는데 소송을 부추기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교육부는 이달 중으로 교원의 생활지도 범위·방식을 규정한 가이드라인과 악성 민원 대응책을 포함한 교권 보호 종합 대책을 내놓을 예정인데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교육부 고시 변경만으로 가능한 방안은 그것대로 추진하고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방안은 조속히 입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길 바란다. 교사들의 절박한 호소에 교육 당국과 국회는 응답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꾀할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교권 보호 대책 마련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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