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문화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

2023. 8. 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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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체부, 번역원 무리한 감사
문학 나눔 사업 삭감 태세
출협 고발… 업계 불만 커져

문화 관련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불가능한 일을 과제로 삼는 경우, 현장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경우, 정책 수혜자인 국민을 함부로 적으로 돌리는 경우다. 요즈음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는 일이다.

지난 6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K-북 비전 선포식’을 발표할 때, 솔직히 나는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다. “우리 책이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 공쿠르상, 부커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이게 말이 되려면 ‘세계 3대 문학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 3대 문학상 같은 건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저잣거리 한담이라면 몰라도 정부 정책에서 목표로 내세울 만한 ‘사실적 실체’가 아니다.

게다가 공쿠르상은 프랑스어 작품만 수상할 수 있을 뿐, 번역 문학 작품은 수상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 굳이 인정받고 싶으면 페미나상을 노려야 한다. 이 상은 공쿠르상만큼 권위가 있는 데다 부커상처럼 번역 소설 부문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삼으면 정책은 허황해지고 세금은 낭비된다.

‘세계 3대 문학상’을 받을 수 있게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한국문학번역원이 한다. 지난 7월 3일 문체부는 번역출판지원사업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번역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번역원 이사로 일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지적 내용이 너무 부실했다. 문체부가 번역 출판 현장을 이해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문체부는 심사기준 중 ‘작품성’ 항목 비중이 제일 높은 점, 2021년 하반기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 14건 중 1건만 현지에서 출판된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런데 문체부가 바라는 ‘세계 3대 문학상’은 문학성이 있을 때만 받을 수 있고, 그 문학성은 번역과 출판에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일 때 가능하다. 그 기간은 때때로 몇 년이 걸린다. 목표나 지침이 어긋나면 일할 수 없다. 현장에 바탕을 둔 정책만이 성공할 수 있다.

문인들, 출판인들 불만도 커지고 있다. 문체부에서 관련 지원사업을 폐지 또는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문학 나눔은 우수 문학 도서를 선정해 도서관, 사회복지시설 등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소외 계층의 문학 접근성을 높여 ‘일상에 스미는 K문학’이라는 문학진흥 정책 목표에 부합할뿐더러 작품성 높고 이름값 높지 않은 문인, 특히 청년 문인들을 격려하고 그 작품 출판을 촉진한다. 문체부는 이 사업 예산 64억원을 모두 삭감할 태세다. 곳곳에서 문인들이 웅성대는 이유다.

문체부는 출판 진흥은커녕 차려진 밥상조차 흔들고 있다. 지난 5월 27일 문체부는 세종도서 사업을 문제 삼았다. 세종도서는 국민이 함께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선정해 도서관 등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양서를 펴내거나 마케팅 능력이 모자란 소형 출판사, 고사 직전의 학술 출판사 등에 큰 힘이 돼 왔다. 공정히 운영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문체부는 보도자료에 “세종도서는 독서문화시장에 양서라는 평판을 확보해 주는 것”이란 표현을 썼다. 아직도 문화 행정에 이러한 관치적, 시혜적 표현을 쓰는 데 놀랐다. 양서의 평판을 정부가 정하면 ‘리스트’가 된다. 이 사업의 본질은 독서문화 확산에 있다. 좋은 책은 출판-독서 생태계에 속한 국민이 정하는 것이고, 정부는 전문가 도움을 받아 그 평판이 널리 퍼지게 돕는 것이다. 본말이 뒤집히면 정책은 산으로 간다.

문체부의 호통과 질책 행정은 한계가 없었다. 며칠 전 서울국제도서전 운영을 빌미로 대한출판문화협회를 고발했다. 초유의 일이다. 출판계에서는 오는 17일 최근 정부의 출판 관련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예고했다. 정책 수혜자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정책은 모두 실패한다. 화나게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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