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노인의 다섯 가지 문제
1833년 봄 어느 날, 72세 노인 다산 정약용은 혼자 우두커니 방안에 앉아 있었다. 밖에 무슨 재밌는 일이 있는지 젊은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궁금해진 다산은 아이를 시켜 물어보았다. “별일 아닙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젊은이는 노인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노인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는다. 다산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참고 넘어갔다. 백 번 넘어간 끝에 어쩌다 한소리 하면 젊은이들이 들으란 듯 수군거린다. “저 노인 노망들었네.” 다산시문집 ‘몹시 늙어 자조하다’라는 시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다산조차 노망들었다는 소리를 피하지 못했다.
다산은 노망들지 않았다. 이 무렵 다산이 지은 또 다른 시, ‘노인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을 보면, 그는 머리와 치아가 빠지고 눈과 귀가 어두웠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다. 오늘날 한국 고전으로 손꼽히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모두 노년의 저작이다. 다산뿐이랴. 한국 고전의 걸작은 대부분 노년작이다. 반면 대학자의 발언을 노망으로 치부한 젊은이들의 이름은 전하지도 않는다.
노인에 대한 편견이 노망뿐이겠는가. 유영하(1787~1868)의 보산집 ‘다섯 가지 문제’는 노인에 대한 당시 사회의 편견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노인에게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노망(老妄),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 둘째는 노욕(老慾), 늙어서 욕심만 많다. 셋째는 노혼(老昏), 늙어서 정신이 어둡다. 넷째는 노겁(老怯), 늙어서 겁이 많다. 다섯째는 노패(老悖), 늙어서 패악질을 부린다는 말이다. 하여간 안 좋은 건 전부 늙어서 그렇단다. 그는 항변한다. 노인은 인생의 지혜가 담긴 격언을 말하는데, 젊은이는 노망으로 치부한다. 노인은 먼 훗날을 내다보고 염려하는데, 젊은이는 늙어서 욕심이 많아 그렇다고 한다. 말을 아끼면 늙어서 정신이 어두워졌다 하고, 행동을 조심하면 늙어서 겁이 많다고 한다. 누구나 화낼 법한 상황에서 정당한 분노를 터뜨리면 늙어서 패악질을 부린다고 한다.
유영하는 젊은이들에게 일갈한다. 망령들고 욕심 많고 어둡고 겁 많고 패악질하는 젊은이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젊은 사람도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의 항변처럼 이 다섯 가지는 늙고 젊고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악덕이다. 유독 노인만 문제 삼는 것은 편견이다. 늙어서 그렇다, MZ세대라서 그렇다. 전부 마찬가지다. 개인적 경험, 주관적 감정, 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세상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제 좁은 소견만 믿고 세상이 전부 그런 줄 알면 곤란하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김은경의 노인 비하 발언은 그래서 문제다. 미래가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 젊은이와 똑같이 1표를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며,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해야 한다는 중학생 아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란다. 그렇다면 이참에 1인 1표 제도를 ‘합리적’으로 손보자. 나라에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군필자는 한 표 추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자녀 수에 따라 한 표씩 추가, 미래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고학력자는 한 표 추가, 혁신위원장처럼 전과가 있으면 한 표 박탈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어떤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은 민주당이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편가르기식 진영논리를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보여준다. 형식적 사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헌법적 가치를 무시했으니 정치인으로서 완전히 실격이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신뢰를 잃은 마당에 당의 미래를 결정할 자격도 당연히 없다. 혁신은 이미 글렀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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