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의대 열풍과 다양성 실종의 위험
의대 진학 열풍이 불고 있다. 초등학생 네 명 중 한 명이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고 한다. 학원가에서는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입시반이 성행 중이다. 지역대학이 위기라고 하지만 의대만은 예외다. 정시모집에서 부산의 한 의대는 지난해 33 대 1, 대구의 한 의대는 29 대 1로 이삼년 사이에 지원율이 세 배 이상 높아졌다.
디지털 혁명으로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 반도체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것이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른바 ‘SKY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과 카이스트 등의 공학계열을 제치고 지방 의대가 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SKY 대학을 자퇴하고 재수해서 지방 의대를 가려는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서울대는 341명, 고려대는 855명, 연세대는 678명이 자퇴했다. 서울대의 경우 자퇴생 80% 이상이 이과생이어서 이들이 의학계열 진학을 위해 자퇴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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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변하는 사회, 인기 직업도 변화
미래 읽지 못하는 자녀 교육 열풍
디지털 혁명으로 의료체계 변화
다양성으로 미래 사회 준비해야
」
과연 미래에도 의사가 되는 것이 최고의 보수와 직업안정을 보장해줄 것인가? 초등학생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시키는 학부모들은 미래에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처럼 다양성이 실종되어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 직업을 위해 아이들을 몰아치는 것이 우리 사회 미래에 바람직할까?
이른바 ‘VUCA’(변동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사회) 시대를 맞아 오늘은 맞지만 내일은 틀릴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 직업에 대한 열망으로 교사나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때 교직은 좋은 대우에 존경받고, 직업의 안정성과 정년 후 연금까지 보장되는 최상의 직업이었다. 그러던 교사직이 학령인구 감소, 학생과 학부모의 교권침해, 행정업무 과중, 교원 처우 하락 등으로 서이초등학교 젊은 교사의 자살에서 보듯 지금은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교사노조가 교사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지난 일 년 간 교사 87%가 이직이나 사직을 고민했고 68.4%의 교사가 교사직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 사이에 교권 침해로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은 교사도 26.6%나 된다고 한다. 10대 1을 넘던 교대 입시 경쟁률도 이제는 1대 1을 조금 넘는 데 그친다. 공무원도 작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재직기간 5년 이하인 대졸 하위직 공무원 65.3%가 이직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기 있던 직업이 하루아침에 기피 직업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의 연봉이 OECD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의사면허는 자격증이기에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전문직에 속한다. 따라서 의사가 되기 위한 힘든 수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평생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에 선호되는 직업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의 개념과 의사의 역할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면 오늘 누리는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가치도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의학지식을 외우고 익혀야 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그처럼 많은 지식의 습득이 필요했고, 그런 전문성을 가진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환자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의학지식이 의사의 전문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보편지식으로 바뀌게 되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미국 최고의 심장병 전문의 에릭 토폴(Eric Topol)이 쓴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를 보면 의료의 미래는 빠르게 바뀐다. 이 책의 영어 원제목은 ‘이제 환자가 당신을 볼 것이다(The Patient Will See You Now)’다. 디지털 혁명으로 의료지식의 독점성이 사라지면서 의사의 절대 권위가 급속히 붕괴하여 의료민주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의료영역에 들어와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하고 원격진료가 보편화하면 의사의 역할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개업의 중심의 의료체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도화된 의료서비스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인류의 수명연장에 따른 의료보건 서비스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의료계라는 좁은 영역의 울타리도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이미 기계공학과나 전자공학과에서 의료기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기계공학과 교수 중 상당수가 의료 관련 연구를 하고 의료기기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한다. 지식을 전달하던 교사의 역할이 디지털 학습과 원격강의로 급격히 변하듯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하면 개업의의 역할은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미래사회 변화 속에서 오늘 인기 있는 직업이 내일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보듯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성직이다. 의대 열풍이 단순히 직업의 안정성과 경제적 보상만을 추구하기 위한 현상이라면 미래의 개인도 사회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실종된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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