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얼마 뒤 "퇴원하세요"…가족 없는 환자인데, 병원은 왜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퇴원하라고요? 배가 아프고 땅기는데."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A씨는 병원 측의 퇴원 요청을 받고 이렇게 항변했다. 그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고, 죽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데 며칠 더 있으면 안 되냐"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의료적으로 더는 할 게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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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책 퇴원에 방치된 환자들
독거·노인가구 증가 위험 커져
병원 나선 노인 40% 낙상 경험
"퇴원후 통합돌봄 제도화 절실"
」
경남 창원의 독거노인 김모(73)씨는 지난 5월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다. 걸을 수 없어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수 없었다. 자녀는 모두 직장인이라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요양병원행을 택했다. 김씨는 "중환자 신음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한다. 병원비로 600만원이 나갔다. 석 달 만에 집(빌라 2층)을 왔지만, 계단을 내려갈 수 없어 주변 신세를 진다. 김씨를 수술한 병원은 가족 상황, 가옥 구조 등을 묻지도 않았다. 요양병원도 연계해주지 않았다.
한해 노인 70만명이 수술받아
한국의 병원은 치료는 잘한다. 그걸로 끝이다. 퇴원 후 환자의 회복기 삶은 챙기지 않는다. 대형병원은 입원일수 최소화에 골몰한다. 6~10일 입원하면 서둘러 나가야 한다. 병원도 근근이 굴러가는 마당에 어쩔 수 없다. 병실 회전이 수익과 직결된다. 병원이 환자의 '완전 회복'까지 책임질 이유도 없다. 2021년 암·척추 등의 수술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이 약 70만명이다(건강보험공단). 바로 일상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퇴원 후 회복까지 통합돌봄이 필요하다. 그런 서비스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재입원이 많다. 조희숙 강원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외국 논문을 보면 노인은 입원 기간에 활동량이 줄어 퇴원 후 체력·근력이 손상될 우려가 크고, 퇴원 후 6개월 동안 최대 40%가 낙상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강원대 의대 분석 결과, 국내 60세 이상 환자가 퇴원 후 90일 동안 이런저런 병으로 재입원하는 비율이 22%에 달한다.
일부에서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 조희숙 교수팀(환자중심 전환기 케어 연구그룹)은 한림대 춘천성심병원과 공동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퇴원 환자 203명에게 통합돌봄 서비스 연구를 진행 중이다. 108명은 서비스 제공자, 95명은 미제공자(대조그룹)이다. 입원 이틀 후 환자와 가족을 상담해 퇴원계획을 세운다. 흡입기 사용법, 호흡재활법, 운동법 등을 교육한다. 약 복용, 스트레칭 앱 활용을 돕는다.
지역의 복지기관 연계가 중요하다. 집에 갈 형편이 못 되면 요양병원에 연계한다. 흡연자는 금연클리닉으로 연계하고 금연 패치나 껌을 지급한다. 동사무소가 제공하는 병원 동행 서비스, 도시락 배달, 단기 가사지원이나 신체 수발 서비스 등을 연결해 준다. 보행이 어려운 환자는 방문 진료를 연계한다. 퇴원 이틀 이내에 집이나 요양병원으로 찾아가 잠을 잘 자는지, 약을 제대로 먹는지, 식사를 빠트리지 않는지, 지역사회 연계서비스가 잘 작동하는지 등을 확인한다. 네 차례 전화 상담하고, 1개월 후 다시 집을 방문한다.
통합돌봄 하니 병세 27% 호전
그랬더니 호흡곤란 지수가 27% 줄었다. 서비스 미제공자는 외려 7% 늘었다. 흡입기 숙달 정도가 9.4%(미제공자 1% 감소) 향상됐다. 운동 실천 환자가 20명 늘었고(미제공자 6명 감소), 질병 관리 자신감은 5%(미제공자 1% 감소) 커졌다.
독거노인 이모(82)씨는 퇴원 후 독립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요양병원 입원을 도왔고, 여기서 나온 후에는 주민센터의 노인돌봄서비스를 받게 했다. 홍모(81)씨에게 가정용 산소호흡기 사용법, 운동법을 교육했더니 숨 차는 증세가 크게 줄었다. 한 노인은 "경사가 급하지 않은 언덕길 걷기를 알려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노인은 "자식도 집에 못 오게 하는데 간호사가 오는 게 귀찮았는데, 이런저런 교육을 해주니 좋다"고 말했다.
퇴원환자 통합돌봄 서비스는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이 일부 환자에게 제공한다. 서울대병원은 2020년 심각한 실어증을 보이는 뇌경색 퇴원환자(86·여)를 교육하고 약물을 조정했다. 재택 화상 진료를 나가다 중소병원으로 연결했다. 보건소의 방문재활 서비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상향 신청, 뇌병변 장애 등록, 재난적 의료비 지원 신청, 소방청 119 안심콜 서비스 등을 연결했다. 이렇게 했더니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29% 개선됐다.
장기요양등급 받기까지 석 달 공백
손기영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부 퇴원환자에게만 가정간호 서비스가 제공된다. 퇴원 후 한 달간 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블랙박스와 같은 상태에 놓인다"고 말했다. 유애정 건강보험연구원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은 "퇴원 후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는 데 한 달 걸린다. 그 기간에는 아무것(서비스)도 없다"며 "고관절이나 대퇴부 수술을 하면 요양병원 외는 갈 데가 없다. 틈새를 채울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숙 교수는 "입원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리셋(Reset) 기회이다. 상당수는 회복하지 못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다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이 바닥까지 떨어진다"며 "한국의 경제 수준에 맞게 퇴원환자 돌봄서비스가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사회복지학과 오델리아 리 교수는 "미국에서는 환자를 중심에 두고 퇴원 후 병원-집-요양원 간의 환자 전환(이동)이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이뤄지게 돕는다. 재입원을 예방하고 웰빙을 증진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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