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반려견, 그리고 유기견과 들개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A씨는 “밖에 다니기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들개 때문이다. 전원주택에 사는 그는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가지고 있다. 폭염 때문에 아침 일찍 텃밭으로 나섰는데 무언가를 사냥하는 들개 무리를 목격했다고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 속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화성시에서 포획된 들개는 7434마리.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잡힌 들개는 845마리다.
화성시뿐만이 아니다. 인천 서구와 강화군, 화성 시흥·하남 등 전국 곳곳에서 들개 출몰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사례는 많지 않지만 ‘개 물림’ 사고나 닭이나 들쥐·고양이를 사냥하는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들개는 이미 공포의 대상이 됐다.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엔 “큰 개들이 여러 마리씩 뭉쳐 다녀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산책길에 만난 개들이 짖으며 쫓아와 미친 듯이 뛰었다” “개들이 때문에 호신용품을 샀다” 등의 글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들개는 왜 생겨난 걸까. 지자체와 전문가들은 ‘유기견’을 지목한다. 야생에 적응한 유기견들이 무리 생활을 하면서 공격성을 지닌 들개가 된다는 거다.
유기견이 생겨난 원인엔 사람이 있다. 신도시 등 개발 여파로 사람이 떠난 곳엔 어김없이 유기견이 발견된다. 제주도나 강원도 등 관광지도 유기견의 발생지다. 경기 지역 한 유기동물보호센터 한 관계자는 “경비 등 목적으로 개를 키우던 가정이나 공장 등이 이사를 하면서 두고 가기도 하고 거리가 먼 관광·휴양지에 의도적으로 버리거나, 휴가 등으로 장기간 주거지를 비우는 과정에서 반려동물이 밖으로 나가 유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유기동물 수는 11만2226마리로 상당수가 개(7만9976건, 71.3%)다. 특히 전체 유기동물의 40%가 나들이와 휴가 인파가 주로 몰리는 5월(1만1769건), 6월(1만1319건), 7월(1만1209건), 8월(1만645건)에 집중됐다. 동물판매업 등록제가 시행된 이후 동물을 거래할 판로가 막히면서 새끼를 유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들개가 된 유기견은 번식을 통해 새로운 들개를 만든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도심지나 주택가에도 출몰하고 있다. 이어지는 민원에 각 지자체는 곳곳에 ‘들개 주의’ 현수막을 붙이고, 적극적인 들개 포획에 나섰다.
하지만 유기동물 보호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다. 10일간의 입양 공고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가정을 찾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다. 반려동물 등록제의 효과도 미미한 상황.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유기 동물을 만들지 않는 것’ 밖에 없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다. 바로 ‘가족’을 뜻한다. 반려동물을 진정한 ‘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반려인들이 먼저 자성해야 한다.
최모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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