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에이지즘
누구나 늙는다. 몸 기능이 조금씩 떨어진다. 죄도 아닌데 때론 조롱 대상이다. 구체적인 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1969년 미국의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는 이런 현상을 에이지즘(Ageism, 연령차별)이라고 정의했다. 나이에 근거한 고정관념이나 특정 연령층을 향한 배타적 행위를 가리킨다.
에이지즘은 꼭 나이듦을 향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연령차별 그 자체다. ‘초딩’이나 ‘MZ세대’에 담긴 비하의 의미가 그 예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뿌리도 깊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 그렇듯 모르는 사이 차별을 조장 또는 묵인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비난받는다. 아들의 아이디어를 소개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합리적’ ‘맞는 말’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걸 보면 영 마음이 없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도울 요량으로 나선 양이원영 의원의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이 미래에 살아 있지도 않을 사람”이란 발언은 더욱 끔찍하다. 연령과 머릿수를 그저 표로만 계산하는 평소 사고가 녹아 있어서다.
더욱 놀라운 건 나이란 키워드를 대하는 한가한 인식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2년 뒤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종착지는 세계 최고령 국가다. 경제성장은 물론 노동·연금·의료 등 공들여 구축한 나라 체계가 통째로 흔들릴 위기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데 그냥 두면 모두 다음 세대의 짐이다. 미래 세대의 투표권까지 걱정하는 이들이 정작 발등에 떨어진 불은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침 인구학자 브래들리 셔먼이 쓴 책 『슈퍼 에이지 이펙트』가 화제다. 고령사회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거란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그는 전제조건으로 에이지즘 극복을 꼽는다. 그래야 노동·소비 등을 노년층이 주도하는 ‘엘더노믹스(eldernomics)’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리턴십(Returnship) 확대’ 등 경청해야 할 아이디어가 적지 않다. 진짜 미래 세대가 걱정된다면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하길 바란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데 머리를 굴려야 한다. 수 얕은 표 계산이 아니라.
장원석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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