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은둔 청년 24만, 짙어지는 분노 사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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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불안 장애 11만, 4년 새 86.8% 급증
반복된 좌절·고립, SNS 비교가 분노 원인
소통, 사회적 기회구조 넓혀야 범죄 줄어
잇따른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 모두 ‘고립된 외톨이’라는 점이다. 서현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최원종(22)은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지만,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고 방황을 거듭하다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지냈다. 계속된 좌절 속에 열패감만 키우며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신림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선(33)도 마찬가지다. 체포 당시 그는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 ×같아서 죽였다”며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경찰 조사에선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정유정(24)은 불우한 환경에 불만을 품고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다. 동기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살인의 동기’도 있을 수 없지만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자리한 분노가 얼마나 위험 수위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모방범죄로 살인 예고 글이 난무하는 것은 기저에 쌓인 불만의 크기가 매우 크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신림역 사건 3일 후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며 칼 사진을 올렸던 이모(24·구속)씨는 “신림동 사건 글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고립된 외톨이’는 반복된 실패의 경험 속에 좌절감이 누적되고, 건전한 사회적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불만을 키우며,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폭발하고 만다. 이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자살률 국가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자신을 향했던 가학성이 타인을 향한 무차별 범죄로 전이되는 형국이다.
특히 고립된 외톨이로 향해 가게 하는 청년들의 불안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20대 불안장애 환자는 2017~2021년 5만9080명에서 11만351명으로 86.8% 늘었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조사에선 만 19~34세 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가 24만 명이나 됐다. 위태로운 청년들의 고립과 불안이 언제 분노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반면에 고단한 청년들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쉰 청년(15~29세)은 39만 명으로 5년 전(29만9000명)보다 30% 늘었다. 지난 2분기 20대 이하의 은행 연체율(0.44%)도 역대 최고다. 50대(0.2%)와 60대 이상(0.21%)의 배가 넘는다. 돈이 없어 빚에 의존하고, 제때 갚지 못해 빈곤이 악순환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유년기부터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SNS 문화도 사태를 악화시킨다. 자기과시와 맹목적 물질주의가 판치는 SNS에선 타인과의 비교로 좌절감에 빠지는 일상이 반복돼 우울과 분노가 커지기 쉽다. 오죽하면 ‘카페인(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우울증’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분노의 게이지를 낮추려면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의 자포자기가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두툼히 하고, 사회적 기회구조를 더욱 넓혀야 한다. 처벌 수준과 경찰 대응의 강화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적 사회구조와 의식을 바꿔가지 않고선 ‘묻지마 범죄’를 막을 수 없다. ‘고립형 외톨이’와 소통할 수 있도록 사회의 따스한 손길이 함께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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