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묻지마일까…‘묻지마 범죄’ 27건, 판결문 분석해보니

양한주,신지호 2023. 8. 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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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해 8월 충남 아산의 한 공중화장실 앞에서 처음 보는 20대 남성에게 "내가 사람을 2번 죽여봤다. 너도 죽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20대 여성 2명을 쫓아가 가방에 있던 삼단봉으로 때려 상해를 입힌 C씨도 같은 수법 범행으로 두 차례 형사처벌 전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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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해 8월 충남 아산의 한 공중화장실 앞에서 처음 보는 20대 남성에게 “내가 사람을 2번 죽여봤다. 너도 죽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A씨가 난데없이 휘두른 톱에 손가락 신경 절단 등 상해를 입었다. 특수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앞서 같은 종류의 범행을 다수 저질러 실형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혐의 전과가 있었는데 또 일면식도 없는 행인에게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8일 국민일보가 최근 1년간 법원이 묻지마 범죄로 인정한 판결문 27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피고인 27명 중 44%(12명)는 동종 전과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실형을 살고 나온 재범이었다. 분명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에서 재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 것이다.

지난 1월 서울 동작구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길을 걷던 피해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폭행한 B씨는 폭행 전과로 실형을 포함해 무려 11회 처벌 전력이 있었다. 12번째 범행에서도 B씨의 범행 동기는 드러나지 않았고 여전히 ‘이유 없는 것’으로 판결문에 적시됐다. 지난해 1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20대 여성 2명을 쫓아가 가방에 있던 삼단봉으로 때려 상해를 입힌 C씨도 같은 수법 범행으로 두 차례 형사처벌 전력이 있었다. 묻지마 범죄에서도 재범 비율이 높은 만큼, 묻지마 범죄 초범에 대한 면밀한 수사와 교정이 동종 범행 재발을 막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 가해자 중 음주 혹은 정신질환 전력이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27명 피고인 중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판결문에 언급된 경우는 8명이었다.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경우도 12명에 달했다.

D씨는 지난해 8월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길거리 공연을 보던 20대 남성의 얼굴을 돌로 내리쳐 상해를 입혔다. 재판부는 “폭행 피해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문제를 가지고 있던 중 만취해 사물 변별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미성년 자녀 2명을 데리고 가던 엄마를 무차별 폭행한 E씨도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신질환 환자가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법원 치료 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제도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묻지마 범죄로 사회적 공포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수사부터 교정, 복지, 보건 등 전 분야의 통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동종 전과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교정 강화, 은둔형 외톨이 등의 사회적 박탈감을 줄이기 위한 복지 정책, 정신질환자 초기 치료 지원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미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분석하고 복지·교정 등 걸맞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 기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 진단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의 복지 제도를 더 두텁게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깔아 고립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개인이 폭발하지 않게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고 위험 신호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결국 사회 전체의 치안을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양한주 신지호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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