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지 그늘 없어 힘들다" 무시당한 4년 전 잼버리 보고서
김민욱 2023. 8. 8. 18:16
태풍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만든 매뉴얼은 쓸모가 없었다.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폭염이 우려된다"며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린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8일 철수하자 "대회를 유치하고 6년동안 재난 상황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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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최종 작성된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8일 국민의힘 정우택(국회부의장) 의원실에 따르면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대회가 열리기 약 한달전인 지난 6월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태풍과 폭염 등 재난 유형별 조치사항 등을 담았다. 위기 경보는 주의·경계·심각 3단계로 구분했다. 태풍은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상향되면, 미리 지정해놓은 대피장소로 참가자가 이동한다. 최창행 잼버리조직위 사무총장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태풍이 오면 준비한 공공기관 342곳으로 빠르게 대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되자 정부는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대신 숙소 등을 수도권 등으로 옮기는 ‘컨틴전시 플랜’(긴급 대체계획)을 부랴부랴 세웠다. 지정한 대피장소가 대부분 초등학교, 중학교 강당·다목적홀이다 보니 ‘숙영지’로써 운영이 어렵단 판단에서다. 잠자리부터 단체급식소·샤워실 등 편의시설 대비도 부족했다고 한다. 숙소·화장실 등을 충분히 확보한 게 아니라, 수용인원을 2.6㎡당 1명씩 단순 계산한 게 전부였다. 이 때문에 1100억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6년간 잼버리를 준비했지만,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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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새만금 철수는 매뉴얼 따른 것"
이와 관련,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전북 부안 새만금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태풍 비상대피 언론설명회에서 “(대응 매뉴얼 속) 구호소는 다시 영지로 돌아오는 걸 전제로 한 일시 수용장소”라며 “(태풍이 상륙하는) 전국적 재난상황이기 때문에 매뉴얼에 따라 (수도권 등으로) 철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뉴얼에 따랐다는 설명과 달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7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컨틴전시 플랜’을 점검한 이후에서야 156개국에서 참가한 3만6000여명이 묵을 숙소와 프로그램 확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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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 뭐하러 갔나
이런 가운데 잼버리 주관 기관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만든 일부 출장 보고서에 행사를 제대로 치르기 위한 핵심제언을 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정부 기관 공무원들은 2019년 미국에서 열린 ‘제24회 잼버리’를 다녀온 뒤 폭염이 우려된다고 했다. 출장보고서엔 “미국 잼버리 참가자들은 ‘4년 전 일본 간척지에서 열린 잼버리는 그늘이 없어 더 힘들었다’며 새만금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가 컸다”고 썼다. 대안으로 그늘막 설치, 나무·잔디 심기 등이 제시됐다.
또 다른 정부 기관 직원들은 외주업체 위탁을 통한 화장실 시설을 크게 늘리고 위생적인 관리방안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에만 그쳤다. 허허벌판에서 열린 새만금 잼버리는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세계적인 망신을 샀다.
이에 대해 정우택 의원실 측은 "이런 출장 보고서 등이 현실에 반영되지 못한 원인도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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