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가는 아이에게 내가 해준 말

김은주 2023. 8. 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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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30여 건의 면접을 보러 다닌 아이를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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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편의점 알바 구함'이라는 공고를 보고선 "여기서 일할 수 있나요?"라며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말을 내뱉자마자 "내일부터 일하세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열흘도 안 되어 힘들다는 핑계로 그만두었다. 20대인 그 당시의 나에게 알바는 쉽게 구해지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것이었다.

올해 대학교 1학년인 된 아이가 방학 동안 스스로 용돈을 벌어보겠다며 알바를 구하기 시작한 것은 5월 말부터였다. 요즘은 알바도 면접을 본다는 것이 큰 변화이자 놀라움이었다. 취업도 아닌 알바에 면접을 본다니 헛웃음마저 나왔다. 알바를 알아본 지 두 번 만에 페스트푸드점에 합격했다고 좋아했다. 합격 문자에는 다양한 준비물에 대해 안내하고 있었다.

문자를 본 지 2~3시간쯤 지났을까. 한참 과제물 준비에 여념이 없던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이 불합격 문자를 받은 것이었다. 다시 보니 처음 합격 문자에 '회신'해 달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걸 자세히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급한 아이는 담당자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냈으나, 담당자는 받지 않았다.

매장을 찾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담당자의 일방적인 대응에 그 매장에서 일하고 싶은 욕구가 꺾인 상태였다. 20여 년 직장생활을 한 나로서도 담당자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몇 시까지 회신 없으면,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라는 말도 없이 2, 3시간 뒤 '불합격' 통보를 보내는 일은 처음 보는 일 처리 방식이었다.

그래도 두 번 만에 합격했으니 곧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며 아이는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연이어 모든 면접에서 다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자는 '초보'라는 이유를 들어 아이를 불합격시켰다. 그게 이유라면 '초보'는 영원히 '초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와 다소 느린 행동, 내성적인 성격, 유창하지 않은 언어 구사 능력도 불합격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근무시 핸드폰 사용이 어려운 곳이라서 아이가 사용하는 시계
ⓒ 김은주
 
언제 합격하나 답답해 하던 6월 말쯤 면접이 필요하지 않은 의류 매장 '옷 정리' 단기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8시간씩 이틀 일하고 온 아이는 녹초가 되었다. 부모로서는 안쓰러웠지만,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방학 내내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하기 위해 아이는 매일 돌아다녔다. 하루에 세 번까지도 면접을 보러 다녔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에도 외출하는 아이를 보면서 속상한 마음조차 들었다.

카페, 빵 가게, 키즈카페, 음식점 등등 가리지 않고 많은 면접을 보다 보니 이상한 곳도 있었다. 1년 이상 계약을 맺을 시 수습 기간을 거칠 수 있는데 법적으론 시급의 90%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카페는 수습 기간 동안 50%만 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법적으로 어긋나는 것 아니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차마 말하진 못한 것 같다. 그 매장으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평소 자주 가던 카페라서 실망이 매우 컸다. 실제로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고소를 해야겠지만, 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위에 알리는 것뿐이었다.

또, 알바 공고문엔 90년대 자주 보던 '용모단정한 분' 찾는 외모지상주의적이면서 구태의연한 문구들도 있었고, '내성적인 사람은 지원하지 말아달라'는 차별적인 글들도 있었다.

소위 '자유 영혼'인 아이는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숨을 여러 번 쉬면서 '어떻게 해야 합격할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의 조언대로 머리 모양을 바꾸고, 정장 바지를 입고, 메이크업을 하기 시작했다. 또, 여러 사이트에서 알바 면접에 대해 스스로 검색하며 연구했다. 결국 키즈카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면접 30여 건의 과정을 거치며 두 달 만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으론 기뻤지만, 세상의 모진 풍파들을 잘 겪어낼 수 있을지, 자신을 지키면서도 일을 잘해 나갈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저 힘들기만 한 아이를 보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오늘도 알바를 나서는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너를 존중하지 않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그만 둬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고객들에게는 밝게 웃어라"라는 조언을 하는 게 사실 참 씁쓸하다.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그 일들이 쉬운 게 아닌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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